[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더불어민주당이 진정 반성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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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5·2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근래 행보가 갈지자다. 민주당의 정체성 차원에서 보자면 퇴행일 수도 있는 모습이다. 우선 부동산 정책 방향이 그렇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대상자가 너무 많다며 과세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아예 종부세 기준을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낸 소속 의원도 있다. 당 대표직에 도전한 한 의원은 청년이 집 사기 좋아야 한다며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에 대해서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국민의 주택 보유세 부담 증가를 이유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당의 기존 정책을 후퇴시키는 방안들이다.

부동산 이외 분야에서도 각종 세금을 깎아 주는 법안들이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무더기로 발의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상공인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게 명분이다. 폐차업자의 세액공제율을 높이거나 재활용업자의 부가세 공제를 연장해 주는 등의 조세특례제한법 등이 그 예다. 그동안 증세 기조를 유지했던 민주당의 정책이 갑자기 감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종부세 등 기존 정책 엎는 주장 속출
잇단 조세특례 등 감세 기조 조짐
가상자산에도 정부와 다른 목소리

“재·보선 때 보인 민심 수용” 근거 대
원칙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비판 커
무엇으로 국민 신뢰 얻을지 고민해야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암호화폐 같은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여당임에도 정부의 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시장에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가상자산을 투기성 자산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도권으로 들이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또 내년부터는 가상자산으로 얻은 소득에 대해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키로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가상자산을 투기가 아닌 투자 대상으로 인정하고 세금 부과도 유예해야 한다는 쪽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일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투기의 위험성을 외면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스스로 세운 원칙들을 무너뜨리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이유를 지난 4·7 재·보선 참패에서 찾는다. 당시 재·보선에서 표출된 민심, 특히 젊은 층의 ‘분노’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엔 기존 정책으로는 내년 3월 대선에서도 실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내포돼 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지난 재·보선을 통해 민심은 정말로 민주당의 자기부정을 요구한 것일까.

민주당의 지난 재·보선 참패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정의를 말하면서도 몰래 특권을 챙긴 일부 정치 엘리트들의 위선, 청년 실업과 경기 부진 등 경제 활성화에 효과를 내지 못하는 어설픈 정책들, 터무니없이 치솟는 집값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직사회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그 일부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민의 상실감과 열패감, 배신감으로 연결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돌아봐야 할 게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엄청난 승리를 거뒀다. 시·도 단체장과 교육감 17곳 중 14곳, 기초단체장 226곳 중 151곳, 광역의원 78%를 차지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이른바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무려 180석으로 압승했다. 마음만 먹으면 헌법 개정 빼고는 모든 입법을 할 수 있다는 180석을 확보했지만, 민주당은 2016년 ‘촛불’이 요구한 시대정신인 ‘적폐 청산’에 무능했다. 오히려 소수의 특권을 없애고 사회적 약자를 돕자며 스스로 세웠던 원칙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면서 야권에 끌려다녔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 담론은 채 1년도 안 돼 폐기 처분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이해충돌방지법 처리는 미적거리고 있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지지부진하면서, 정부와 함께 일관성 없는 대책을 무려 25번이나 쏟아 내면서 부동산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지난해 총선에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파동에 동참함으로써 민주당 자신이 주도해 통과시킨 선거법을 무효화시키는가 하면, 올해 재·보선에선 ‘당 소속 지자체장의 귀책으로 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바꾸면서까지 무리하게 후보를 냈다. 민주당 스스로 숱하게 원칙을 뒤엎으면서 존재 가치를 깎아내린 것이다.

민주당은 재·보선 참패 후 철저한 반성과 국민과의 소통을 약속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해법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는 듯하다. 공자는 정치의 근간을 묻는 질문에 ‘먹을 것’ ‘군대’ ‘백성의 신뢰’ 세 가지를 들면서, 나머지 둘을 버리더라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으로 ‘백성의 신뢰’를 꼽았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으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소통은 신뢰에서 생기고, 신뢰는 원칙을 지키는 데서 얻어지는 법이다. 민주당은 지금 신뢰를 잃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하겠다.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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