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안 돼도 기록 남겨야” 부마항쟁 취재 원고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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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을 취재한 기자의 취재원고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부마민주항쟁의 시위 현장을 자세히 기록한 이 원고는 역사적 가치가 인정돼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일보 마산주재 故김택용 기자
1979년 10월 마산 현장 기록 원고
나흘간 시위 과정 담은 역사적 자료
유족,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기증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하 재단)은 “ 마산 주재 고 김택용 기자가 부마민주항쟁 당시 현장을 취재한 원고를 기증받았다”고 26일 밝혔다. 해당 취재원고는 1979년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김 씨가 본사에 송고할 목적으로 쓴 원고로 추정되는 기사 등 200자 원고지 100여 장 분량이다. 재단 측은 지난 3월 김 씨의 유족으로부터 이 원고를 기증받았다.

‘마산 학생데모 리포트’라는 제목의 원고는 1979년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마산 지역의 시위 내용을 담고 있다. 원고에는 시위의 전개 과정이 상세하게 쓰여있고, 당시 경찰의 문서를 확보해 집회 과정에서 체포된 인물을 통계치로 나타내는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10월 19일 원고에서 ‘이날 밤 10시 군탱크 3대를 동원한 군대 1개 대대가 진입했다. 마산에서 일어난 경남대학생들의 데모로 인해 경찰이 검거한 인원은 2백 96명이며 공무원 3명, 경남대학 및 산업전문학생 56명, 고려대학생 1명, 고교생 3명, 일반인(공원, 회사원, 여자) 2백 26명, 기타(구두닦이) 10명’이라고 쓰는 등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유족들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기사를 써내는 기자’로 김 씨를 기억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김 씨의 아들은 “당시 마산 경찰서 인근에 살았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경찰서로 출근하시면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가곤 했다”며 “일요일에 기사를 쓰시면 마산역에 가서 원고를 본사로 보내라는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고 아버지를 회상했다.

유족 측은 “김 씨가 부마민주항쟁 당시 자신의 기사가 보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원고를 정리했다”고 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김 씨는 이후 아내와 동료 기자들에게 좋은 세상이 오면 자신의 취재기록을 꺼내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김 씨는 1983년 경남 진주 인근에서 태풍 현장을 취재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45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김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편집국장을 포함한 기자분들이 많이 오셨다”며 “아버지의 기록을 소중히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취재기록을 보관해오던 김 씨의 아들은 지난 3월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유품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재단은 김 기자의 이번 원고가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를 발굴하고 진상규명을 하는 데 있어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며 취재원고를 정리해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최은정 학술·기념사업 팀장은 “취재원고에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5.18 당시 푸른눈의 증인이라고 불렸던 힌츠페터 기자처럼 기자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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