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데뷔 초부터 ‘전형성’ 거부 시대의 금기와 변칙에 끊임없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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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 같은 윤여정의 연기 인생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연기 인생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같다. 데뷔 초부터 전형성을 벗어난 연기로 호평받았던 윤여정은 시대의 금기와 변칙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견고히 다져 왔다. 부박한 현실에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온 덕분일까. 올해 일흔 셋의 이 배우는 스크린 데뷔 50년 만에 상업영화 중심지인 미국에서 연기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전형성’ 거부한 1970년대 신인 배우

윤여정은 뭐든 ‘전형적인’ 것을 거부해 왔다. 스크린 데뷔부터 남달랐다. 1966년 TBC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한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은 김기영 감독의 ‘화녀’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중산층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명자를 연기했다.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에 가정부로 취직했다가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낙태하는 캐릭터다. 윤여정은 당시 시대에 요구됐던 ‘현모양처형’ 여성과는 거리가 먼 광기와 집착 어린 캐릭터를 파격적인 연기로 풀어내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그해 시체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부일영화상 신인상, 대종상 신인상 등을 휩쓸며 벼락스타가 됐다. 이 작품이 인기를 끌자 윤여정은 이듬해 영화 ‘충녀’로 김 감독과 재회했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중반, 윤여정은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뒤 미국으로 갔다. 이후 한동안 연기를 쉬었던 윤여정은 이혼 후 13년 만인 1980년대 중반 한국에 돌아와 생업전선에 나섰다.

이후 윤여정은 배역을 가리지 않고 연기했다. 드라마 ‘고깔’에선 중학생 아들이 있는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는 노처녀 기자를 맡았고, ‘엄마의 방’에선 재혼에 실패한 여성을 억척스럽게 그렸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어미’(1985)에선 인신매매 당한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딸 대신 복수에 나선 비정한 엄마를 그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이때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 ‘작별’ ‘목욕탕집 남자들’ 등 TV 히트작에 연달아 출연해 ‘김수현 사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스크린서 ‘반짝인’ 200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 윤여정은 스크린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윤여정은 임상수, 홍상수, 이재용 등 색깔 있는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하며 한계를 뛰어넘는 연기 도전을 계속했다.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영화배우 윤여정의 진가를 다시 한번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그는 시한부 남편을 두고 늦바람 난 ‘병한’을 맡아 “나 요즘 생전 첨 오르가슴이라는 걸 느껴” 등의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윤여정은 이후에도 임 감독과 ‘하녀’(2010)와 ‘돈의 맛’(2012)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두 영화 모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홍상수 감독과는 ‘하하하’(2010),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등을 함께 작업했다. 윤여정은 ‘하하하’로 ‘하녀’와 함께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두 편의 영화로 초청받았다.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도 윤여정의 연기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종로 탑골공원의 ‘박카스 할머니’로 등장해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을 빚어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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