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굿바이 홍콩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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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은 홍콩 영화의 전성시대였다. 성룡은 명절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골손님, 주윤발은 최초의 외국인 CF 모델이 되었다. 롯데가 주윤발의 ‘사랑해요 밀키스’로 인기를 끌자, 해태는 왕조현을 기용해 ‘반했어요 크리미’로 맞대응했다. 우린 왜 그렇게 홍콩 영화에 빠졌을까. 80년대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자 군사독재에 신음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당시에 서구식 자유가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홍콩의 문화나 분위기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극장에 가서 홍콩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홍콩 영화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쇠퇴기를 맞았다. 1984년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 반환이 확정되면서 불안감이 싹텄고, 1989년 천안문 항쟁 때 민주화를 요구하면 어떻게 되는지 목격했다. 유명 배우들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보지만 대부분 실패한 뒤 돌아왔다. 또한 2014년 홍콩 우산 혁명과 2019년부터 시작된 홍콩 민주화 운동은 영화인들을 편 가르게 했다. 주윤발·양조위·유덕화는 민주화를 지지했지만, 성룡은 중국 당국 편에 섰다.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홍콩에서 중계방송조차 되지 않았다. 홍콩에서 5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방송사들은 다른 이유를 둘러대지만 사람들은 공산당이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지난해 5월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중국이 홍콩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중국 당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과정을 담은 ‘두 낫 스플릿’이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올라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작품상을 받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중국을 “거짓말이 도처에 널려 있는 곳”이라고 듣기 싫은 소리까지 했다.

검열 기준에 맞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피하다 보니 콘텐츠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홍콩 보안법 통과로 홍콩 영화는 조만간 완전히 망할 것이고, 한국 영화 시장이 대안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중국 영화에는 ‘국뽕(지나친 애국주의)’과 신파가 너무 많다. 중국 영화에는 한국의 1980년대와 비슷한 수준의 심의 기준이 적용된다고 한다. 양우석 감독은 “이제 중국은 한국 영화 산업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기생충’에 이은 ‘미나리’의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잇단 한국 영화의 쾌거와 홍콩 영화의 몰락이 대비되는 요즈음이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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