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의 총아 ‘블렌디드 러닝’ 주도하는 부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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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만 홀로 교실에 있는 부산 덕천중학교의 블렌디드 러닝 수업 장면(왼쪽 작은 사진)과 올 2월 부산 안민초등학교에서 시연되고 있는 블렌디드 러닝 수업. 부산시교육청 제공

“블렌디드 커피는 알겠는데, 블렌디드 러닝은 뭔가요?”

블렌디드 러닝. 말부터 너무 어렵다. 이 용어를 처음 접한다면 ‘혼합하다’라는 뜻을 지닌 영어 동사 ‘blend’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도대체 무엇을 섞는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학생 일부만 등교하거나 등교를 아예 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학습을 계속 이어나가야만 했기에 지난해 4월 전국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수업 방식이 전격 도입됐다. 블렌디드 러닝도 온오프라인을 섞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용어다.

사실 블렌디드 러닝은 미래교육과 미래학교의 수단으로 코로나19 이전부터 연구돼 왔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앞당겨졌을 뿐이다. 학교 현장에서 블렌디드 러닝 도입 초기 대혼란을 겪었지만,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물론 원격학습이 초래하는 학력격차도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 있다.


코로나가 앞당긴 온오프라인 결합수업
올 연말까지 부산 대부분 학급에 구축
디지털 칠판 다양한 자료 입체적 전달
몰입도 향상·과밀 학급 해소 등 과제


■부산의 모든 학교에 블렌디드 러닝 구축

부산 망미초등학교 수학시간. 교사는 열심히 수업을 진행 중이지만,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얼핏 보면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도 수업 내용에 포함돼 있다. 블렌디드 러닝 수업에서는 디지털 칠판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모두 접속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특히 학생은 스마트폰을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해 자신의 의견을 글 또는 이모티콘으로 표현할 수 있다.

부산 덕천중학교 과학시간에는 독특한 풍경이 연출됐다. 교실에는 학생이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교사만 홀로 남아 칠판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은 모두 개인 태블릿PC에 접속해 수업에 참여 중이다. 화면 한쪽에는 교사와 친구들의 얼굴을 함께 마주볼 수 있다. 교사는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학생들과 함께 문제풀이, 퀴즈활동, 모둠학습 등을 수행한다.

부산시교육청은 올해 적극적으로 ‘부산형 블렌디드 러닝 활성화 사업’에 나서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 233개교 4380학급에 블렌디드 러닝 환경을 구축했다. 올해에는 537억 원을 들여 373개교 8122학급에 추가로 블렌디드 러닝 인프라를 신설한다. 현재 부산의 초·중·고 학급은 1만 3383개로 90% 이상의 학급에 블렌디드 러닝 시스템을 구축하는 곳은 전국에서 부산이 유일하다. 부산미래교육원 주도로 블렌디드 러닝 맞춤 학습 플랫폼 ‘부산 에듀원’도 개발된 상태다.

류성욱 부산미래교육원장은 “올 연말이 되면 사실상 부산의 모든 학교에서 블렌디드 러닝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서 “블렌디드 러닝을 중심으로 부산 교육은 보다 빨리 미래교육에 접근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래교육의 조건, 블렌디드 러닝

교사가 다양한 자료를 디지털 칠판으로 끌어와 아이들에게 수업 내용을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게 블렌디드 러닝의 장점이다. 또한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서 과제를 하는 전통적인 수업 방식과 달리, 온라인 선행학습 뒤 교사와 오프라인 토론식 강의로 연결되는 ‘플립 러닝’은 학습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블렌디드 러닝 방식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참여도도 높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부산교육청 이미선 교육정책연구소장은 “예를 들어 화산 폭발을 블렌디드 러닝으로 다룬다면, 화산 폭발 장면 영상을 교실로 불러올 수 있다”면서 “블렌디드 러닝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일으켜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때 교육 콘텐츠보다 블렌디드 러닝이라는 하드웨어 구축에 거액의 예산을 사용하는 게 맞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사회에 맞는 미래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미래학교가 필요한데, 블렌디드 러닝이 미래학교의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단순 하드웨어라고 무시할 수 없다. 학생 개인에 초점을 맞춘 미래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블렌디드 러닝 학습 체제가 완료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 소장은 “수업과 평가를 아이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고, 이를 통한 맞춤형 교육이 미래교육의 모습이다”면서 “블렌디드 러닝은 여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프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학급당 20명 이하 줄여야 미래교육 성과

블렌디드 러닝의 다양한 장점에도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 현장이 아닌 원격으로 장시간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돌봐줄 여력이 없다 보니 블렌디드 러닝이 자칫 학력격차를 벌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교육정책연구소도 이 점을 고려해 블렌디드 러닝과 학력격차의 상관관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원격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수업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 중 하나는 합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다. 교육정책연구소의 이상철 선임연구위원이 올 초에 발표한 ‘부산 미래학교 모델 개발 연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교육청 차원에서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개별화 수업 환경 구축, 학교 특성에 맞는 유연한 학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합급당 학생수가 블렌디드 러닝 성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이 소장은 “미래교육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래 교육은 근본적으로 학생 개개인에 초점을 둔 교육이다. 학급당 30명 이상의 과밀학급에서는 블렌디드 러닝 시스템이 구축된다 하더라도 교사가 학생을 개별적으로 주목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보다는 원격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중도 이탈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현재 부산의 초·중·고 학급당 학생 수는 21.6~2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학급당 학생수 23명에 근접한다. 하지만 블렌디드 러닝이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되려면 20명 이하가 더 좋다. 이 소장은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면 절대 이탈하지 않는다”면서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교사가 원격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면, 블렌디드 러닝이 보다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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