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 논란, 저출산 사회에 ‘공정 화두’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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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발화된 ‘여성 징병제’ 논의가 뜨겁다. 국방력 약화, 형평성 등을 이유로 도입 논의가 이뤄진 건 처음이 아니지만 관련 국민청원이 나흘 만에 20만 명 넘는 동의를 받으면서 또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저출산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를 막기 위해 도입을 찬성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현실성 없는 여성 징병제 대신 군 현대화와 복무 환경 개선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맞붙고 있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청원이 나흘 만에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25일 오후 4시 30분 기준 청원 참여자는 22만 8000여 명이다. 청원인은 “여성의 능력이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남성만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발상”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국민청원 4일 만에 20만 명 동의
“남성만 병역, 후진적·여성비하적”
“저출산 대안… 병역 유지 가능
여성 사회 진출 기회에도 도움”
“일부 남성, 여성에 보복성 주장
국방력 높이는 데 별 도움 안 돼”

이같은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최근 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남녀평등 복무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되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자는 것.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여성 징병제 청원에 반발해 ‘여성 대신 소년병을 징집하라’는 ‘맞불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때 아닌 ‘여성 징병제’ 논의에 청년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부산에 거주하는 최 모(29·여) 씨는 “남성들이 군 복무 환경이나 보상 제도를 국가에 요구하는 대신 ‘형평성’을 따지며 여성들에게 보복성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국방력을 보완하려면 여성 징집 대신 군 현대화와 복무 개선 강화가 우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학생 이 모(25·남) 씨도 ‘기계적인 형평성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씨는 “여성을 군에 징집해봤자 국방력을 높이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단순히 형평성을 위해 구체적 근거 없이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김 모(34·남) 씨는 ‘여성 징병제’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김 씨는 “저출산으로 인해 징집 인원 감소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여성도 군 복무를 하게 되면 육군 규모를 유지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군 복무에 대한 특혜나 공정성 논란도 없어지고, 여성들의 사회진출 기회 전반에 있어서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일부 여성들도 여성 징병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강 모(31·여) 씨는 “오히려 남성 징병제가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어 왔다고 생각한다”며 “여성도 군대를 가게 되면 남성들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취업준비생 박 모(28·여) 씨도 “여성 군 간부도 있는 만큼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군 생활 전부는 아니라도 기초 군사 훈련은 받아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전 모(28) 씨는 “남성과 똑같은 군 복무를 하는 대신, 여성에게는 일정 기간 기초 군사 훈련만 수료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면서 “전쟁 등 유사시 국민 전체의 대응도 빨라지고 여성들이 군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하지만 ‘여성 징병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미 헌법소원에서 남성 징병제에 대한 합헌 결정이 여러 차례 내려졌기 때문. 2010년, 2011년, 2014년에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3조 1항이 성차별적’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재판관 전원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청년층이 ‘여성 징병제’ 도입을 같은 선상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영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극도의 경쟁 상황에 놓인 청년들은 병역 의무조차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만큼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정치권은 군 가산점, 여성 징병제 등 청년들의 남녀 갈등을 부채질하기보다, 그들 모두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배·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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