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더 크게 말할 수 있다” 역설의 시인 유병근, 눈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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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향년 89세로 별세

염결하게 시를 써온 부산의 대표적 원로 시인 유병근 씨가 2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유족은 “2년 전 담도암 진단을 받고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했는데 보름 전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음식을 못 드셨다”며 “가족들과 조용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1932년 경남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출생인 그는 1953년 문학청년들의 동인지 6집에 참여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그 한참 뒤인 1970년 38세 때 을 통해 등단 절차를 거쳤다. 1950년대 부산의 첫 동인지인 에는 천상병 고석규 송영택 김일곤 등이 참여했으며 6집에는 고인을 비롯해 조영서 손경하 하연승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초현실주의 조향 계열의 ‘강한 모더니즘’과는 다르게 서정과 모더니즘 사이에 걸쳐 있는 새로운 시를 썼으며 장차 유병근도 그런 시 세계를 구축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부산의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생업을 이으면서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이고도 왕성한 문단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부잡스러운 문단 생활이 아니라 오로지 글을 쓰는 데 바쳐졌다. 그는 수필도 쓰면서 부산 수필의 격을 올려놓기도 했는데 총 30권을 넘는 저서에서 시집과 수필집이 각각 절반을 차지한다. 그는 시와 수필을 두고 “시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라면 수필은 있었던 것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은 곧 창조였던 것이다. 수필을 쓰면서 시를 벼렸고, 시를 쓰면서 산문정신을 벼린 것이 그의 문학 인생이었다.

그렇게 많은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정신은 수식 없는 단출함, 그리고 종내는 침묵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겨울 산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으며 ‘침묵으로 더 크게 말할 수 있다’는 역설의 미학을 직조했다. 글을 쓰면서 글 이전의 침묵에 닿고자 했으며 말과 글을 부리면서 말과 글 너머의 저쪽에 이르고자 했다. ‘그릇도 비어있을 때 그릇’이라는 역설의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부산 문학이 더욱 발전하려면 치열한 고민의 글쓰기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늘 일깨웠다. 그 일깨움을 받은 많은 이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2000년대 전후부터 그는 생업으로 글쓰기 수업을 잇기도 했는데 그 수업을 들은 많은 이들이 등단했다. 그의 치열한 문학정신은 많은 후배 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꽃의 깊이는 알 수 없다(중략) 우리가 갖는 꿈과 절망으로 피어올린 꽃에서 또 다른 무엇이 보인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차라리 저승이라 할 것인가 꽃이여, 우리 곁을 떠나버린 쓸쓸함이여’(‘꽃에게’ 중에서). 봄꽃이 지는 계절에 떠난 그는 신곡문학상(대상), 현대수필문학상, 부산예술상, 최계락문학상, 부산시문화상(문학)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부인과 정하(미국 거주) 정훈(〃) 종훈(부산소방본부 소방장) 씨, 2남 1녀가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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