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정직한 이들의 달,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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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어요. 부정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선거를 부정으로 한 사람들에게 선거를 공정하게 다시 하라고 말했어요. 그것뿐이에요.”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은 1970년대 초 월간 <샘터>에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발표한다. 제목은 ‘정직한 이들의 달’.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총상을 입고 그날 밤 수도육군병원에서 숨을 거둔 서울대 문리대 학생 김치호의 마지막을 그렸다. 저것은 학생이 피거품과 함께 토해 낸 말이었다. 간호사가 물었다. “데모 주동자인가요?” 그는 고개를 젓는다. “학교 교과서가 주동자에요. 부정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도 부정이라고 가르치는 교과서가!”

악화 일로 미얀마 사태 안갯속
국제사회 움직임 더디기만 할 뿐
유엔 개입 중·러 반대로 불발

불의한 권력 맞선 4·19 정신
저 먼 땅 미얀마에서 활활
민중의 자주적 역량에 응원을


4·19 혁명이 올해로 61주년을 맞았다. 6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4·19 이념은 갈수록 빛이 바래 가는 듯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먼 땅 4월의 미얀마에서 그 정신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본다. “70일 동안 700명밖에 죽지 않았다. 유엔은 천천히 하라. 우린 여전히 수백만 명의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남아 있다.” 얼마 전 한 미얀마 청년이 든 피켓의 문구는 절박함을 속울음으로 껴안은 역설의 절규다. 이런 호소, 무고한 희생 앞에서도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비정할 만큼 더디다.

미얀마 해법으로 주목받는 ‘R2P’는 유엔의 ‘보호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원칙을 가리킨다. 특정 국가가 반인도 범죄, 인종 청소, 전쟁 범죄 따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일시적으로 해당 국가의 주권을 무시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2005년 유엔 세계정상회의에서 결의되고 다음해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쳐 확립된 국제법이다. 이것이 적용된 역사적 사례가 2011년의 리비아다. 당시 안보리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군사 개입이 이뤄졌고, 42년간 1인 독재를 유지해 온 카다피 정권이 그때 무너졌다.

만약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개입한다면 몇 가지 거론되는 시나리오가 있다. 경제 제재와 평화 유지군 파견, 그리고 비행 금지구역 설정과 PSI(대량 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국제협력 체제)를 명분으로 한 해상 봉쇄, 나아가 유엔 다국적군에 의한 군부 섬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풍부한 자원의 보고인 미얀마를 내놓을 리 없다.

하지만 R2P가 성사된다 해도 미얀마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데 그 안타까움이 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군사 개입은 내정불간섭 원칙을 외면한 주권 침해 논란을 부른다. 선제공격의 정당성이라든지 불가피한 민간인 희생 문제, 그리고 보상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 결국 서방의 개입 논리는 과거 서구 제국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섣부른 개입은 새 정부로의 이행 과정에서 더 큰 분열과 갈등을 낳을 우려도 있다. 2011년의 리비아가 그랬다. 미얀마 내 130여 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은 국가적 통일성을 저해하는 중대한 정치적 변수다. 유혈 사태의 장기화를 막고 미얀마의 안정과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과연 어떤 게 옳은 길일까. 그걸 판단하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

지금 국제사회가 마땅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유엔과 별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노력까지 멈출 수는 없다. 여론조사 결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국민의 60% 이상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찬성한다. 얼마 전 우리 정부는 군용물자 수출 중단에 이어 유상원조 사업 철회 검토에 들어갔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조치들이 국제사회의 또 다른 개발협력 프로그램에도 분명히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일어선 나라다. 그밖에 시민들에 대한 직접 지원과 보호라든지, 난민에 대한 인도적 조치 같은 활동을 통해서도 기여할 바를 찾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정권은 미얀마 민중에게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성의 역량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비극을 알리고 공분을 이끌어 내 군부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이다. 군부의 일방적인 집단학살을 막고 시민과 군부가 동등하게 싸울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4·19는 먼 옛날의 아련한 추억이 아니다. 미얀마가 지금 그 정신과 이념은 어디에 있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불의에 눈 감지 못하는 정직함과 삶의 구경꾼으로 안주한 무력함, 그 거리에 대해서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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