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관사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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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관장 관사 역사는 1906년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통감부를 설치한 뒤, 조선으로 대거 부임한 일본인 관리들의 숙소로 시작했다. 서울 용산 총독 관저도 제2대 조선 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재임하던 1908년께 러일 전쟁 군비잉여금으로 세웠다고 한다.

이런 관습은 일제 패망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졌다. 보안이 철저한 관사는 VIP 숙소는 물론이고, 기관장과 유지들이 친목을 다지거나, 은밀한 로비 등 ‘그들만의 리그’로 이용됐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방 청와대’ 용도로 부산과 경북, 광주, 전북과 제주 5곳에 관사를 건립했다. 지방 순시 때는 자신이 머물고, 평소엔 본인이 임명한 시장과 도지사들에게 숙소로 제공했다. 지방 청와대는 주민과 괴리된 ‘외딴 성’으로 세워져 지방 권력과 권위주의를 상징했다.

높은 적색 벽돌 담장에 트럭도 들어갈 수 있는 으리으리한 대문이 특징인 부산시 수영구 황령산로7번길 60 부산시장 관사. 1985년 축구장 2.5개 크기인 대지 5447평에 연면적 635평 규모로 건립됐다. 2만 3000그루의 조경수와 잔디밭 한가운데 우뚝 선 이층집으로 이뤄진 시장 관사는 ‘지방 청와대’ 중 가장 큰 규모였다.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관치 시대의 유물인 단체장 관사 대부분이 도서관, 전시관, 어린이집 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전임 부산시장들만 멀쩡한 집을 놔두고 막대한 세금으로 운용되는 관사로 잇따라 입주했다. 외국 대기업 CEO 및 외교관 등과의 투자 상담 및 연회 장소로 이용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런 목적으로 활용됐다는 성공담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행정안전부가 2010년 예산 낭비와 낮은 활용도를 이유로 관사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치단체장 관사 운영 개선방안’을 내놓을 정도였다. 지역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는 지방선거에서 세금으로 집 문제까지 해결해 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가세했다.

다행스럽게도 4·7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형준 부산시장이 “관사에는 입주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관사를 연구소나 도서관, 장애인평생교육센터, 역사기념관 등으로 바꾸는 활용 방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민이 바라는 것은 저 성에 고립된 ‘성주’가 아니라, 이웃과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시장이지 않을까? ‘지방 청와대’의 새로운 변화, 이웃과 함께 하는 ‘부산시장’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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