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민주당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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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4·7 재·보궐선거는 끝났고 민주당은 패인과 대안 찾기에 나섰다. 패인 분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검찰개혁에 몰입한 나머지 부동산 등에서 민심과 민생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정의와 공정 가치를 추구하면서 말 따로 행동 따로 즉, ‘내로남불’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 언론, 사법, 노동, 재벌 등에 있어서 민주당의 개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 된 진단일까?

민주당은 이념적으로 보수도 중도도 진보도 아니고, 경제·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도 리버럴(개혁적 자유주의)도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도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하이브리드 정당이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고 포괄정당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경쟁하고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로, 단일한 이념이나 도덕적 기준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표를 얻기 어려운 사회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정당들은 대체로 포괄정당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 득표 중심 실용주의 포괄정당
선거 패인 이념성·도덕성만 강조한 탓

내년 대선·지방선거 정권 재창출 위해
개혁과 실용 사이 균형 감각 살려야

임기 1년 안에 개혁 추진 어려울 듯
민주당이 살아야 한국 정치 건강해져



포괄정당은 이념의 혼종 정체성을 지니고 표가 되면 어떤 가능한 정책이든 추진하는 득표 중심의 실용주의 정당으로, 이념이나 도덕, 개혁과 같은 가치나 선명성보다 실용적인 득표를 더 중시하는 정당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무역과 투자 정책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에서는 보수, 대북 정책에서는 진보, 재정 정책에 있어서는 리버럴, 복지 정책에서는 리버럴과 사회민주주의 중간 정도의 정당이다. 민주당이 이런 혼종 정체성을 지니는 것은 기득권층의 저항과 개혁 세력의 요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학 관계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이런 정책적 혼합을 통해 포괄정당으로서 가능한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정당은 개혁과 반개혁 세력 사이의 역학 관계 그리고 실용적 득표라는 양자 구도 사이에 기거하며, 이 두 구도를 모두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 집단이다. 이 말은 정당이 개혁만을 추구하면서 실용적 득표를 경시하거나, 실용적 득표만을 추구하면서 개혁과 반개혁 사이의 역학 관계에 무감각하다면, 그 정당은 단기적으로는 집권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존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촛불집회 이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개혁에 있어서 이념적 선명성과 도덕적 투명성만을 강조해 온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부활하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 이념정당이 아닌 포괄정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득권층과 개혁 세력 간의 역학 관계 그리고 실용적 득표 사이에서 객관적인 균형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포괄정당은 자신이 지닌 이념적 혼종 정체성으로 인해 선거와 국정 운영과 개혁에 있어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스스로 정치적 혼란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을 통해 이러한 혼종 정체성의 모순과 문제를 지속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 포괄정당의 운명이고, 이런 능력을 지닌 포괄정당이 더 많이 집권하는 정당이 된다.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이런 포괄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민주당은 남은 1년 동안 환골탈태해야 한다. 먼저 재·보궐선거 대패 이후 보수와 진보 간의 역학 관계가 보수에 유리하게 기운 점을 인정하고, 민주당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선거 대패 이후 진보와 개혁 의제를 강하게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의 행보가 ‘더 명확한 진보’가 아니라 ‘반보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달리 말해, 민주당의 반보수적 행보는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다양한 정책이 야기할 문제들, 즉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가속, 자유지상주의적 반복지정책 강화, 냉전과 반북으로 한반도 긴장 심화, 사회·경제·법적 기득권 동맹이 가져올 극심한 사회 분열과 같은 부작용을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

반면, 진보적 개혁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4·7 대패는 개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민생 특히 부동산 민생 실패와 정의와 공정에서 발생한 민주당의 내로남불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토지공개념 도입, 촛불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열망을 반영하는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 도입,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 도입, 복지권과 환경권 등 사회권 확대 등의 개혁 의제는 차기 민주당 정부에서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는 대국민 청사진 제시와 약속이 남은 1년 동안 필요하다. 민주당이 살아야 국민의힘도 더 긴장하고 건강해진다. 이게 한국 정당정치가 제 길을 찾는 첫 단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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