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형준 시장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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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사회부 행정팀장

지난해 4월 23일, 평화로운 봄날. 부산의 리더가 갑자기 사퇴하면서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부산시 공무원들은 길 잃은 아이처럼 우왕좌왕했습니다. 이유를 알게 된 시민들이 느꼈던 분노와 부끄러움은 곧 트라우마로 변했습니다. 시장님도 분명 ‘그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8일이었지요. 전쟁 같았던 선거에서 승리한 시장님이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요즘 아이들 말을 빌자면, ‘썰전 아저씨’가 부산시장이 되어 시민들 앞에 선 겁니다.

‘협치’와 ‘통합’ 취임 일성 박형준 부산시장
1년 3개월 또 망치면 부산 미래 회생 불가
투명한 ‘영끌’ 시정으로 시민 상처 보듬고
과거와 차별화된 시장으로 역사에 남길

부산시정을 줄곧 지켜본 저는 시장님 이전에 세 명의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마주했습니다.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시장 권한대행인 행정부시장과 경제부시장까지 줄줄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모습도 지켜보아야 했지요.

‘권한대행’들은 모두 훌륭한 역량을 갖춘 공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시민이 선출한 시장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그러한 애로를 호소할 정도였으니까요. 가덕신공항과 부울경 메가시티,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등등 정말 부산과 부산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현안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권한대행 이하 공무원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했습니다. 시민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힘을 얻는 선출직 부산시장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 시간이었지요.

시장님은 지금껏 그 누구보다 인지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청와대, 정부, 국회, 학계 어디 가릴 것 없이 많은 경험을 쌓으셨으며, 시사 방송 고정 출연까지 한 ‘전국구 인물’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합니다. 그러니 시장님의 양어깨는 그만큼 더 무겁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시장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3개월 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전국에서 주시하는 도시 부산의 이미지도, 부산의 미래도 거기에 달린 겁니다.

시장님은 살면서 부산시민들의 얼굴을 얼마나 자주 마주하셨는지요. 도시철도나 버스를 이용할 일이 많으신지요. 저는 거의 매일 버스와 도시철도를 갈아타며 출퇴근을 하면서 더불어 사는 시민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곤 합니다. 어르신들, 중년 남녀, 청년들, 아이들,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이웃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스크를 낀 탓에 침묵과 긴장이 흐르는 공간 안에서 마주치는 눈빛은 예전의 그것이 아닙니다. 다들 묵묵히 고된 일상을 견뎌내며 ‘조금만 더 버티자’고 기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무너지면 부산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가족, 지인,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활기차게 열던 그날의 모습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시장님은 취임 일성으로 소통과 협치, 통합을 내세우셨습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16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손을 맞잡았고, 가덕신공항과 부울경 메가시티 등에 힘을 모으겠다고 하셨습니다. 19일에는 부산 기초단체장들과도 만나 협치를 약속했지요.

또 여야를 떠나 과거 시장이 벌인 일이라도 그대로 이어가고, 정무 조직이 아닌 공무원 중심으로 일하겠다고 선언하셨지요. 그렇게 공무원들에 힘을 실어주신 건 잘 하신 일입니다. 결국 어떤 현안이든 350만 시민의 손발인 그들이 일을 하고 결과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시장님은 취임 초기 두 엔진을 가동해 시정을 이끌고 계십니다. 46명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부산미래혁신위원회와 매주 목요일 분야별로 대안을 모색하는 ‘코로나19 비상경제대책회의’입니다. 20일 오후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시장님을 포함한 부산시 고위 공직자들이 ‘반 성희롱·성폭력 서약식’도 합니다.

모두 취임 초기에 필요한 일들입니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산을 위해서 뭘 할건데?’라고 묻는 시민들에게 과연 과거와는 차별화된 실질적인 시정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부산시민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선거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구악’과 결별하는 투명한 박형준만의 시정으로 시민 성원에 답해 주십시오. 보여주기식 ‘쇼’가 아닌 구체적이고 단단한 성과를 내셔야 합니다. ‘합리적인 보수’를 내세운 시장으로서 문정수,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오거돈 전 시장까지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차별화된 시장의 모습을 백지에 새롭게 그려 주십시오.

그래야 청년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부산으로 다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시장님도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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