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수출에 투영된 부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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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많은 경제지표 가운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의 기념일을 갖고 있는 것은 수출이 아닐까 싶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여 제정된 ‘수출의 날’은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의 날개를 달았다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무렵 수출의 중심에 바로 부산이 있었는데, 1977년 부산의 수출액은 22억 달러로 우리나라 수출의 22%를 점했다.

그런데 중화학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이던 1972년 부산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그보다 훨씬 높은 29.2%에 달했다. 이 29%의 수치를 음미하면서 그 뜻을 좀 더 확인해 보자. 이것은 우리나라 수출품의 29%가 부산항을 통해 나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수출품의 29%가 부산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부산은 한때 한국의 공장이었다.

국내 수출 비중 29% 찍던 부산
한때지만 ‘한국의 공장’이라 불려

지난해는 2.2%까지 비중 떨어져
부산경제 몰락 보여 준 지표·경고

경제 회복 없이 부산 미래 불투명
수장 바뀐 부산시·상의 행보 기대


전성기 동명목재와 국제상사는 합판과 신발에서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해당 업종에서 삼성전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 기업들의 경쟁력을 물론 오늘날의 기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성공 역시 당시로서는 혁신의 산물이었고, 앞선 투자의 결과였다.

그 성과는 일자리의 창출이었고 다투어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부산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은 그러한 세계적인 기업 활동의 성과였다. 다시 수출 비중 29%로 돌아와 보면, 이후 어떠한 부산의 경제지표도, 항만 물동량을 제외하면, 이 수치를 능가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부산 수출 29%는 전설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부산의 수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는데, 그 속도와 낙폭 또한 대단하였다. 그러다 지난해 부산의 수출 비중은 마침내 2.2%로 떨어졌다. 1977년 22%의 정확히 1/10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전체 수출이 매년 5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대약진기에 돌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수출은 100억 달러를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다.

이렇게 부산의 수출이 부진한 것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산업을 갖지 못한 결과이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중화학공업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중화학공업화 선언이 있었던 1973년 전후 부산의 자료들을 읽다 보면 매우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된다. 온 나라가 새로운 산업으로 넘어가는 기대와 의욕으로 들끓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부산은 너무나 조용하였다.

더욱이 한때 철강산업의 핵심인 제철소 부지로 가덕도가 검토되는 상황이었는 데도 말이다. 그쯤 되면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가 나서서 유치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산의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을 놓고 떠들썩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현실에 안주했다. 더러는 땅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하지만 부지 탓만은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부산경제가 잘나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여전히 합판과 신발 그리고 섬유가 호황을 누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변화가 절실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산업고도화에 뒤진 한계가 바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위기론이 등장하였고, 실제로 얼마 안 있어 부산경제는 진짜 위기를 맞았다.

2%까지 떨어진 부산의 수출 비중은 한계에 다다른 부산경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지표이자 경고이다. 모든 힘을 모아 경제를 다시 회복시키지 않으면 부산의 미래는 없다는 경고이다. 중화학공업 얘기를 처음 하던 시기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다시 우리는 대산업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라 모든 산업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곳곳에서 플랫폼이 블랙홀처럼 산업을 빨아들이고 있다.

마침 부산경제를 이끌어 갈 시장과 상공회의소 회장이 비슷한 시기에 바뀌었다. 두 사람 모두 부산경제를 살리는 데 최우선적으로 힘을 집중하겠다고 하였다.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집무를 시작한 것도 유사하다.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은 우선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절박함과 진정성을 실행에 옮겨 갈 것인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 앞서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고 창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에 모든 힘을 경주하여야 한다. 매일같이 쏟아내는 정부의 크고 작은 공모사업도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정부가 구상 중인 지역전략산업 활성화와 2단계 공공기관 이전에도 주도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의 큰 자원인 대학을 비롯하여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새로운 구상과 실천의 효과가 나타날 때 부산의 수출 비중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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