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새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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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지역사회부장

부산·울산·경남에게 세계화와 지역화를 합성한 ‘글로컬라이제이션’은 굳이 수도를 좇아갈 필요 없는 지역 발전의 희망이다. 마침 4차산업혁명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중심과 주변의 지리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배율을 줄여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은 비중심권 국가인 한국에 기회일 수 있다. 양자택일의 익숙한 프레임에 갇힌다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던 구한말 비극이 재현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제안과 시도 2가지가 있다. 특히 둘 다 부울경, 우리 지역과 밀접하게 연관된 해외사업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부울경 역량 높일 해외협력사업 제안
북극항로 거점항 개발, 에너지 도입
부산·오사카·톈진 기업 협력체 구성

미·중 양자택일 프레임 벗어날 길은
부울경-중·일·러 지역 협력 높이는 것
싱가포르 번영이 메가시티의 미래상

하나는 북극해 항로에 대비하는 극동러시아 거점 항만 개발 사업이다. 2019년 9월 한국과 러시아 부총리 합의로 해양수산부가 타당성 검토에 착수, 최근 용역보고서가 발간됐다. 극동러시아 청정 해역의 고부가 수산물을 위판하고 현지 가공해 유통하는 수산부두 역할과 함께 곡물과 원자재 등 다양한 복합 화물을 처리하는 부두다. 부산과 경남에 둔 기반을 수산업과 가공산업의 해외 전초기지로 삼을 만하다. 이 부두까지 사할린 천연가스관이 연결되기에, 부산항에서 선박용 연료로 판매하도록 액화시설만 갖추면 원가가 저렴하고 이동 거리도 짧아 훨씬 낮은 가격에 LNG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부산항 LNG벙커링 기지와 에너지 허브를 꿈꾸는 울산이 향후 동아시아 LNG거래 허브로 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운·물류 측면에선 유럽으로 향하는 북극항로 초입에 거점 항만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활용하는 육·해운 복합물류 옵션을 하나 더 갖게 된다는 의미다. 북극 빙하가 녹는 것은 인류에 비극이기에 탄소 배출을 줄이며 더디 녹도록 노력하는 것과 함께, 불가항력적으로 열리는 기회 또한 놓쳐선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일본·중국과의 지역 단위 경제협력 사업이다. 일본 오사카, 중국 베이징 인근 톈진 지역기업들이 부울경 기업과 협력해 공동 연구개발(R&D), 공동 시장 개척, 합작 기업 설립 등 과거에 없었던 수준 높은 기업 협력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이 최근 ‘중한우호기업협의회’를 통해 부산에 전달됐다. 일본에선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역 10개 도시에서 20개 업종의 기업들이 6월까지 참여 업체 구성을 마치기로 했다고 한다. 제조 기술력이 아직 일본에 못 미치는 업종, 중국에 진출했다가 납품 대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던 업체들에게는 이 ‘한·중·일 기업 협의체 플랫폼’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친환경, 전동화, 스마트화 등 변화의 물결에 고심하는 부울경 제조기업들에게, 최소한 기술과 시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할 정도의 협력체로는 충분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한우호기업협의회는 지난해 부산에 중국 관광객 연 300만 명 유치, 동북아 전자상거래 물류기지 100만㎡ 부산항 신항 구축 등의 사업을 제안했던 단체다. 코로나19로 당장 관광객 유치가 어렵고, 물류 기지는 행정 절차가 필요한 사업이지만, 민간 차원 기업 협력은 당장 시행 가능하므로 이 사업부터 3개 지역간 공감대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 16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부산시를 찾아 박형준 시장을 만나고, 미래혁신위원회에서 동남권 메가시티에 대한 강연을 했다. 소속 정당을 떠나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에는 뜻을 함께한다는 확고한 공감대가 확인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이날 동북아물류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가장 뜨거운 토론 주제였다고 한다. 위에 제안된 에너지 허브와 전자상거래 물류 기지가 중요한 아이템이 될 수 있다. 가덕신공항을 활용한 항공·해운 복합화물은 동북아 전자상거래 물류 기지로, 동아시아 에너지 허브는 극동 러시아 LNG와 향후 미국 셰일가스 기지로 노려볼 만하다. 시장은 크지만 체제와 이념 문제로 외자 투자가 어려운 중국, 지진·화산 문제로 안정적 SOC(사회간접자본) 구축이 어려운 일본, 이 양국을 동서로 이웃한 우리나라의 ‘지리·정치·경제학적’ 이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국가 차원보다는, 부울경이 인접 중·일·러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 국익 극대화 방법이다. 믈라카해협 싱가포르의 번영이 아시아~유럽 항로 입구에 자리해 유류 벙커링과 화물 환적, 이를 받쳐주는 해양금융의 발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부울경에 시사하는 바 크다. 기존 항로보다 거리가 30%가량 짧은 북극항로는 2030년쯤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없이 맞이한 운은 잔에서 넘쳐 버려지는 술이나 마찬가지다. 부울경 메가시티 앞에 놓인 2가지 제안, 우리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마침 4·19혁명 61주년이다. 항쟁의 고장 부울경,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듯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될지 모를 대한민국의 다른 내일을 이끌어갈 기회가 오고 있다.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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