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택배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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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는 아니더라도 공원형으로 꾸민 대단지 아파트에 살면서 느낀 좋은 점은 차량 걱정 없이 유유자적할 수 있다는 거다. 차 없는 아파트를 표방하는 많은 지상 공원형 아파트가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더 쾌적한 공간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누군가에겐 삶의 여유를 더해 주는 이 지상 공원형 아파트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문 앞 배송’을 주로 하는 택배 기사 차량(탑차)의 지상 단지 진입을 금지하는 공원형 아파트가 늘면서 ‘택배 갈등’이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지난주 내내 떠들썩했던 서울의 모 아파트 ‘택배 논란’이 대표적이다. 혹시 우리 아파트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택배 차량을 지상으로 못 다니게 하는 곳이 전국 300~400곳에 이른다니 결코 남의 일은 아니다. 아파트 측 요구사항은 이렇다. 입주민의 안전과 아파트 시설물 훼손 방지를 위해 차량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소방차와 이삿짐 차량 등 필수 차량을 제외하고는 지하 주차장을 통하라는 거다. 택배노조도 개별 배송 중단으로 맞섰지만, 일부 주민의 과도한 항의에 하루 만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민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 만큼 택배 기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중요하다. 보통의 택배 차량 높이가 2.5~2.7m인데, 2019년 이전 지어진 공원형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는 2.3m에 불과하다. 기존 택배 탑차 출입이 어렵다. 차고가 낮은 저탑 차량으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탑 차량에선 허리를 펼 수 없어 엉거주춤 선 채 작업을 해야 한다. 근골격계질환을 심화시킬 것이다. 아파트 바깥에서부터 손수레를 사용하면 배송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에 의한 택배 기사 과로사 문제가 우리 사회의 현안인데 이 또한 적절한가 싶다.

택배 서비스는 이제 생활물류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2020년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연 65.1회로, 국내 경제활동인구로 따지면 1인당 연 122회이다. 아파트에 따라선 주민이 직접 찾아가는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거나, 아이가 학교 간 시간대에 ‘조건부’ 택배차 진입을 허용한다든지 ‘실버 택배’ ‘전동 카트’ 지원 등 다양한 대안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생하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적어도 택배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사회라면 말이다. “어이, 택배!”하는 마음으론 이 사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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