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유머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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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 시간) 영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수상소감은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윤여정은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엔 ‘콧대 높다(snobbish)’고 알려진 영국인들이 좋은 배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고 영광”이라며 농담 섞인 말로 큰 환호를 받았다.

영화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윤여정은 그 말로 시상식 시즌에서 우승했다”라고 트위터에 적을 정도로 윤여정의 유머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진지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윤여정의 소감은 자칫 불쾌한 반응을 부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의 여자배우가 한국 부일영화상이나 청룡영화상을 받고 “점잖은 체하는 한국인들이 주는 상이라 특히 좋다”라고 소감을 말한다면, 윤여정처럼 큰 박수를 받을 수 있었을까.

윤여정의 소감에 대한 환호 뒤에는 유머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 유머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대화의 기술이자 삶의 태도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안타깝게도 못생긴 외모의 대명사였지만, 뛰어난 유머 감각 덕분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링컨의 상대편은 링컨에게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며 인신공격을 펼쳤다. 링컨은 이런 비난에 대해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 중요한 자리에 왜 하필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냐”라며 응수해 큰 호응을 끌어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퇴임 후 뇌졸중과 치매를 앓았고, 그녀 가족과 주치의는 대중 앞에서 실수할까 싶어 그녀가 연설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2007년 의사당에서 열린 자신의 동상 제막식 때문에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고, “나는 철의 여인인데 왜 동상을 구리로 만들었냐”라며 즉석 유머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다.

유머(humor)는 사람이라는 뜻의 휴먼(human)에서 유래된 말로, 그 자체에 인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고 설명했고, 니체는 “인간은 극심한 고통을 받는 존재인데 그 고난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것이 유머다”라고 정의한다.

길어지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많은 이들이 우울과 절망을 호소한다. 반대로 유머가 더욱 필요한 시대인 듯하다. 김효정 라이프부장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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