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안전한 부산의 밤길 되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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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얼마 전 부산의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사업 일환으로 ‘모디회담’이 열렸다.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은 시민들이 직접 지역문제를 발굴하고,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 사회혁신 주체가 함께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체를 의미한다. 이번 모디회담을 통해서 부산시민들은 113가지 다양한 의제를 제안하고 참여했다. 그중 한 가지가 ‘부산의 안전한 밤길 되찾기’였고, 시민들의 참여로 이야기 모임이 이루어졌다.

여성이라면 공감할 밤길 안전 문제
개인이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의제 공론화해서 해법 찾는 수밖에

부산의 안전기준선 만들어 준수하고
도시 조도 개선·여성안전 실태 파악
보행·주거 안전 시민 인식도 높여야


해당 주제의 이야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벌써 까마득한 이야기지만 10대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떤 남자가 쫓아온 적이 있다. 복도까지 쫓아오기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며 소리를 질렀는데, 집 안으로 들어선 뒤에도 공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20대 시절에는 새벽 출근하는 길에 골목길을 지나가던 트럭 기사가 창문을 내리더니 내 눈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시늉을 하면서 지나갔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차 번호를 찍어 두려 했지만, 혹시 보복이라도 당할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먼저 일어났다.

밤에 택시를 타면 꼭 번호를 찍어 두거나 외워 두고, 어두운 골목길에 접어들 때면 음악을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기도 한다. 112 번호를 눌러 둔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걸어가기도 하며, 집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때까지 친구나 연인과 통화를 하기도 한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 거의 대부분이 겪어 보았던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여성과 남성의 안전에 대한 체감, 그중에서도 각종 성범죄와 밤길 보행에서 안전체감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20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 남성은 16.9%가, 여성은 두 명 중 한 명꼴인 49.8%가 야간 보행 시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각종 사건을 접하면서 불안은 현실이 된다. 부산에서는 남구 대연동 원룸 밀집 지역에서 한 남성이 원룸에 침입해 강간 사건을 일으켰다. 2년 전 불과 120m 떨어진 거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그 지역이다. 피해자는 모두 여자였다.

언제까지 개인이 조심해서 해결할 문제일까. 왜 사고가 벌어진 뒤에야 대책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걸까. 예방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없는 것일까.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심해도 소용없다는 여자들의 절규가 떠오른다. 그러나 개인적 절망을 사회적 의제로 바꾸어 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공론장에 의제를 꺼내 놓고 머리를 맞대는 수밖에 없다. 모디회담에 참여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몇 가지 개선책을 제안해 본다. 물론 여기에 제시된 대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첫째, 부산의 안전기준선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신지예 후보가 현재의 서울 시민복지 기준선 영역에 문화, 환경, 사회적 관계, 안전 등의 영역으로 확대하자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여 성별에 따라 안전에 대한 위협과 체감도가 달라지는 점을 고려하되, 보편적 안전기준선을 만들어 부산시가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도시 환경에 있어 조도 개선을 위한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전시는 2020년 밤길 안전 대책으로 도시의 조도 개선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3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하였고 3년 동안 연간 200~300억 원씩 총 8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 관악구는 2021년 주민협치사업으로 총 9억 5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CCTV 결합 보안등 점멸기를 설치하고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유지 보수 및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경우 에코델타시티 조성에 있어 IoT 안전 인프라를 활용하여 스마트 안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부산시의 안전 취약 지역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여성안전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와 데이터가 마련되어야 한다.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스토킹과 주거침입 등의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정작 경찰청에는 이와 관련한 범죄 통계가 없어 피해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범죄가 대표적인 암수범죄임을 감안할 때 통계와 데이터를 개선하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넷째, 보행과 주거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더욱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의 경우 성평등 시민 모니터링단을 모집해 성인지적 관점을 통해 미디어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부산시의 보행과 주거 환경 역시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된 시민들의 모니터링 활동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선택되지 않는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야기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안전 확보가 생존의 가장 기본 요건임을 감안할 때, 누구나 생존 위협을 겪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계속 모색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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