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불꽃, 고려 유민의 담장, 조선의 낙화 놀이' 그 시간에 멈춘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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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3색 여행

한적한 말이산고분군, 고려동 종택 전경,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무진정과 인근 마을 벽화, 무진정 낙화놀이, 고려동 종택 동백꽃, 말이산고분군에서 내려다본 시내와 함안박물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두르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 봄 햇살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도로는 한적했고 자동차들은 속도에 연연하지 않았다.

느릿하게 다녀온 경남 함안 ‘3색 여행’이었다.

■말이산 고분군

함안은 아라가야의 도시다. 4세기 말까지 김해 금관가야와 함께 전기 가야연맹의 양대 세력을 이룬 나라다.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말이산 고분군과 함안박물관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아예 내부 수리작업을 하고 있는 박물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대형 불꽃 무늬 토기 형태의 출입구와 정원에 설치된 수레바퀴 모양 토기, 사슴 모양 뿔잔을 둘러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가야 유물을 제대로 볼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말이산 고분군의 시원하고 수려한 풍경은 실망한 마음을 달래고도 남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 나지막한 언덕에 펼쳐진 고분군은 여유와 평화 그 자체다.

고분군 입구에 중년 여성 두 명이 편안하게 퍼질어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봄의 전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쑥을 캐는 모양이다. 두 여성 주변에는 잎이 무성해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햇살이 따갑다고 느껴지면 그늘 아래 잠시 피하면 될 일이다.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고분군을 산책하는 세 사람이 눈에 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도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게 다소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만사불여튼튼’이다. 언덕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고분들이 차분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말이산은 이름만 산이지 사실 나지막한 언덕이다. 해발도 고작 40~70m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분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다.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한 거리다. 이곳저곳을 두루두루 살펴보아도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코스다.

언덕 꼭대기 잔디에 잠시 앉는다. 시내 중심 지역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함안 풍경은 포근하면서 안온하다. 모든 게 그 자리에 멈춘 것처럼 느릿하고 조용하다. 분위기 탓인지 모든 의식이 저절로 멍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주변 경치와 상황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고려동 유적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함안에 살던 이오 선생은 크게 반발했다. 스스로를 고려 유민이라고 생각한 그는 마을 주변에 담을 쌓고 조선과 경계로 삼았다. 그 담 안쪽을 ‘고려’라고 불렀다. 마을 입구에는 ‘고려동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인 ‘고려동학’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고려동으로 이어지는 함마대로 변에는 아직도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다. 세상사가 어떻게 바뀌든, 누가 세상의 주인이 되든 자연은 그저 제 할 일만 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려동은 11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잘 익은 동백꽃이 담장 안에 피어난 건물 즉 종택 입구로 들어가면 이곳에 살던 옛 고려 유민들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다. 주거공간인 안채와 계모당, 행랑채는 물론 휴식공간인 자미정도 있다. 이밖에 우물인 복정 등 여러 시설도 살펴보면 된다.

종택 정문을 통해 들어간 내부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다. 이곳에서는 세월이 멈춰버린 향기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 관람객 외에 안내원이나 거주하는 주민은 보이지 않은다. 늦은 밤에 오면 곳곳에서 조선 초에 살았던 고려 유민이 유령으로 나타나 내부 안내를 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당 한쪽에서는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다. 처마 끝에는 세월의 때에 절은 광주리가 걸려 있다. 지체 높은 양반 가문 댁임을 보여주는 장독대에는 대나무가 가로놓여 있다. 방문은 굳게 닫혀 있다. 누군가 문을 활짝 열어 제치면서 반가운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부엌과 광의 문도 잠겨 있다. 과거에는 저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1년 동안 먹을 곡식을 쌓아두었을 것이다.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자미정 담벼락에 시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다. 나라가 망한 뒤 큰 절망에 빠진 고려 유민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슬픈 노래 읊조리며 서로 따르는 이 자리/ 서울로 가서 다시 벼슬아치 옷 입음을 부끄러이 여기네(이오 선생의 시 중에서)’



■무진정

‘낙화(落火) 놀이’라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유산이 있다. 줄에 매달아 놓은 숯 봉지 등이 타들어 가면서 떨어지는 불꽃을 구경하는 봄놀이다.

전국 여러 곳에서 낙화놀이를 즐긴다. 경남 함안에서는 110년 째 낙화 놀이를 이어오고 있다.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돼 있는 행사다. 원래 4월에 펼쳐지는 행사지만 코로나19 탓에 지난해에는 열지 못했고 올해도 무산될 것 같다. 낙화 놀이를 거행하는 장소는 바로 괴산리 무진정과 주변 연못이다.

무진정은 조선 성종 때 사헌부 집의와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조삼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42년 지은 정자다. ‘다함이 없다’는 뜻인 조삼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해발 139m인 성산 끝자락에 세워진 건물이다.

무진정 아래에는 둥근 연못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고, 그곳에 나무로 지은 정자 한 채가 주변의 나무들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못 안 정자로 건너갈 수 있도록 두 곳에서 돌다리가 연결돼 있다. 낙화 놀이를 할 때 참나무 숯가루를 광목 심지와 한지에 싸서 만든 낙화봉 수천 개를 설치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무진정은 그다지 크지 않다. 약간 높은 곳인데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약간 폐쇄적인 느낌도 준다. 하지만 하루종일 햇볕이 따스하게 들고 선선한 바람도 쉽게 드나들 수 있어 공부를 하거나 놀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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