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삶이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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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나는 ‘몸’을 써서 돈을 버는 치과의사였지만, 지금은 글과 ‘말’로 먹고사는 ‘이빨쟁이’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무수한 말들을 적절히 선택하고 조합해 마치 내 말인 것처럼 포장해 팔아먹는 장사꾼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평범해 보이지 않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 포장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쓴맛이 사는 맛.’ 지난 2일 작고하신 ‘건달 할배’ 채현국 선생(1935~2021)이 이사장이셨던 양산의 효암학원 교정에 세워진 표지석의 말이다. 건강이라는 게 무조건 편하고 튼튼한 것만이 아니라 “몸의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의 경험”이라고 떠들어 온 나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나의 관심사인 몸의 건강을 삶의 규범으로 확대한 말이며, 이 칼럼의 화두인 ‘참살이’의 취지가 그대로 반영된 말이기도 하다.

채현국 선생 남긴 말 ‘쓴맛이 사는 맛’
스스로 삶의 주인이려 한 의지 표현
“선한 본성 따른 인생” 가르침 큰 울림

하지만 어떤 말이든 그것을 내뱉은 사람의 삶과 분리하면 필연적으로 오해와 왜곡이 생기기 마련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이 아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고 왈가왈부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덧붙이는데, 이 멋진 말을 묘비명으로 하라는 주위의 권고에 쑥스러워진 선생은 그 뒤에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를 추가해야 한다며 껄껄 웃으셨다고 한다. 아무리 멋진 말이어도 몸의 생리적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통찰이 담긴 일화다.

선생은 상식을 깨는 기행을 일삼은 노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확고한 신념과 세계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지만, 뜬구름 잡는 담론만을 일삼는 제도권 철학자를 경멸했고, 정권의 나팔수가 되기 싫다는 이유로 어렵게 입사한 방송국을 미련 없이 떠났으며, 갖은 고생을 하며 일군 사업으로 번 엄청난 돈을 모두 일꾼들에게 돌려 주었던 일, 그리고 시시하게 살면 행복하다며 사소한 일상을 즐기던 말년의 모습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고자 하는 자기 배려의 소박하지만 강력한 의지였을 것이다. 흔히들 그를 ‘거리의 철학자’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삶의 미학자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선생의 다른 말들을 통해 그가 자신과 공동체를 배려하며 살아온 그래서 우리 모두의 예술 작품이 된 삶을 배워 보자. 그는 “진짜로 자기를 아껴야 남의 생각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살려고 애쓰게 되고, 배우고도 ‘나 무식할래’ 하는 자기 배짱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강제로 훈련된 생각을 하지 말라. 확신은 곧 고정관념이 돼 버려 뭘 자유롭게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론 건방진 생각이 의무일 때가 있다.”

그의 언행이 파격이고 기행인 것은, 강제로 훈련된 생각과 고정관념이 감추고 억압해 온 가장 단순한 삶의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진화해 왔다는 과학 원리 말이다. 항상 일어나는 좋은 일이 아닌 예외적인 나쁜 일만 보도하는 매체들,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야만 돈을 버는 자본,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이 이런 본성을 억압하고 왜곡한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 존재이며 파렴치한 경쟁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상식이 된다. 선생의 언행이 파격인 것은 이렇게 왜곡된 현실 속에 살면서도 서로 돕고 아끼는 원초적 본성을 드러내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파격에 감동하는 것은 우리 속에 감춰져 있던 그 본성이 살아남을 느끼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의 능력과 권위를 믿을수록 치료 효과가 커진다는 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아무런 생물학적 작용이 없는 밀가루나 설탕을 처방해도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이는 현상에 대해 현대의학은 어떤 설명도 하지 못한다. 의학이 삶의 말이 아닌 추상적 개념어를 쓰기 때문이다. 반대로 약효가 없거나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킬 것이란 암시를 받으면 실제로 증세가 악화하는 노세보 효과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암시 속에 살아왔고 그것이 노세보 효과를 발휘해 정말로 악한 세상을 만들어 온 것 아닐까? 이것을 뒤집어, 지지고 볶으면서도 서로 돕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앞세워 긍정적 암시로 플라세보 효과를 키우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선생은 세상의 모든 ‘옳은 소리’에는 오류가 있다고 하셨으니 이런 상상 또한 무수한 해답 중 하나일 터이다. 하지만 정답에 고정되지 않고 선한 본성에 따른 해답을 찾아 나서는 인생을 가르쳐 주신 선생의 말과 삶은 아주 오래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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