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이남자’의 변심, ‘이여자’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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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4·7 보궐선거는 끝이 났고, 이겼든 졌든 거대 양당의 선거 후 지각변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당인도 아닌 마당에 선거 후 정국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은 정치가 좋은 나라를 만들고, 내 삶의 질을 높여 줄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야말로 우리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지속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어서다. 물론 지금까지의 정치가 기대에 부응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도 내 삶을 바꾸는 정치에 대한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는 게 지론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새로운 서울·부산시장 탄생만큼이나 관심 있게 본 대목이 있다. ‘이남자(20대 남성)’와 ‘이여자(20대 여성)’로 대표되는 젊은 층의 표심이다. 그중에서도 이남자의 ‘변심’과 이여자의 ‘소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극명한 차이를 보인 20대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말로는 동일 세대에서 성별 간 정치적 인식 격차가 이렇게 크게 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젊은 층 존재감 발휘한 보궐선거
20대 남녀는 왜 극명하게 갈렸나

‘이남자’의 보수화·젠더 갈등보다
‘탈정치화’ 실용 투표 가능성 커

‘이남자·이여자’ 간극 줄이기 과제
내년 선거도 ‘스윙 보터’ 역할 주목


투표 마감 직후 방송 3사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18, 19세 포함)의 절대다수인 72.5%는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 수치는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이라 부르는 60대 이상 남성의 오 후보 지지율(70.2%)을 앞질렀다. 부산시장 선거는 서울만큼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20대 남성이 63%에 달했다. 그런데 2017년 대선 때 이남자의 선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청년=진보’ 공식을 깬 이남자를 두고 변심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20대 여성(18, 19세 포함)은 어땠을까. 서울 선거는 이여자의 44.0%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 오 후보 지지율(40.9%)을 웃돌았다. 부산은 김영춘 민주당 후보에 이여자의 절반가량(50.3%)이 투표했다. 서울에선 특히 양성평등이나 차별금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신지혜(기본소득당), 오태양(미래당), 김진아(여성의당), 송명숙(진보당), 신지예(무소속) 등 ‘제3의 후보’에서 두 자릿수(15.1%) 득표율이 나왔다. 다른 세대·성별에선 소수 정당·무소속 후보 지지율이 0.4~5.7%에 불과했다. 이여자의 소신인 셈이다.

이남자의 변심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불과 1년 만에 청년층이 보수화됐다”는 언론 분석이 줄을 이었다. 그 기저에는 ‘공정’ ‘성적 역차별’ ‘생존의 문제’가 깔렸다. “본래 극우 쪽에 섰던 분들”이란 평가도 있었다. “‘이남자의 보수화’로 단순화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등장했다. 세대와 진영 갈등에서 자유롭다 보니 ‘이념 투표’가 아닌 ‘실용 투표’를 했을 것이란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대의명분을 수용하지 않는 ‘탈정치화’ 성향이 강한 집단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사실 ‘이남자 현상’에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갤럽, 리얼미터와 같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대통령 국정 지지율 조사에서 20대 남자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진보집단인 3040세대의 지지율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와중에 20대, 특히 이남자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20대 남성 현상’으로 명명됐다.

이때 사람들이 궁금했던 건, 이남자 현상을 20대 남성의 보수화 결과로 받아들일 것인지, 젠더 갈등 내지는 젠더의식 문제로 봐야 하느냐였다. 여기에 한 논문이 답을 내놨다.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 성향과 젠더의식 비교를 중심으로’(최종숙, 2020년)이다. “20대 남성의 이념 성향은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틀로 규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쟁점별로 일관성을 띠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20대 남성의 성평등의식은 3040세대 남성들과 비교해서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가 심각하다면 20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20대 남성의 반(反)페미니즘 의식이 다소 높기는 했다.

이번 선거에서 ‘이남자 현상’이 소환됐다. 그러나 보수화와 젠더 갈등 프레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청년 세대’ 담론이 주로 분배적 불평등과 경제적 위기에서 기인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현재의 삶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이남자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사표가 될 수도 있는 ‘제3 후보 15%’를 찍은 이여자들이 정치에 바라는 바를 제대로 구현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이남자와 이여자의 간극을 줄이는 사회적 노력이 과제로 떠올랐다. 누구라도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남자와 이여자로 대변되는 20대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윙 보트(swing vote)’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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