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핀셋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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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pincette)은 손으로 집기 어려운 작은 물건을 집는 데 사용하는 ‘V’자 형태 도구다. 털이나 가시를 뽑는 족집게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기구는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낳으며 인류 문명의 발전에 한몫했다. 핀셋이 화학과 생물학 실험실, 기계·전자산업 연구실 등에서 아주 미세한 물체나 위험 물질을 조심스럽게 다룰 때 쓰이기 때문. 의료계는 손가락이 닿지 않는 부위와 위생상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경우에 핀셋을 주로 사용한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기계와 장치 중에는 자연을 베끼거나 동식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많다. “자연은 발명의 천재”라고 한 독일 동물학자 베르너 나흐티갈에 따르면, 핀셋은 도요새의 긴 부리를 모방한 발명품이다. 도요새가 갯벌과 습지에서 먹이를 섭취할 때 부리를 집게처럼 사용하는 것에서 착안했다. 위아래 부리가 곧은 것은 핀셋, 굽은 건 수술용 특수 가위의 모델이 됐다고 한다.

핀셋은 세밀함의 상징물로 통한다. 근래 ‘핀셋처럼 한 부분을 콕 집는다’는 의미가 포함된 신조어가 속속 등장했다. ‘핀셋 마케팅’은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홍보를 줄이는 대신 특정 고객층을 집중 공략하는 타깃 영업 기법을 뜻한다. 그룹 차원의 대규모 신입 공채를 실시했던 대기업이 최근 계열사별로 필요 인력을 수시로 뽑는 ‘핀셋 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문재인 정권은 소득 재분배와 재원 조달을 명목으로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세금을 더 걷는 정책으로 ‘핀셋 증세’ 논란을 빚고 있다. 부동산 과열을 막으려고 투기 우려 지역을 지정하는 ‘핀셋 규제’, 취약계층 생계를 중심으로 한 ‘핀셋 지원’ 같은 용어도 있다.

요즘 들어선 ‘핀셋 방역’이 가장 많이 회자하지 싶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핀셋 방역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연장 혹은 영업 제한 대책을 발표한 적이 잦아서다. 이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시설과 업소를 겨냥한 방역 강화 조처를 말한다. 그런데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영업 규제가 이뤄지면서 확진자가 생기지 않은 업소와 감염 사례가 극히 적은 업종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4차 대유행 조짐 속에서 더욱 치밀한 맞춤형 방역이 요구된다. 이보다는 포클레인 같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한꺼번에 퍼 담아 없앨 수 있는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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