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부산학이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우리가 사는 지역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제대로 하자는 뜻에서 출발한 학문이 부산학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열기와 더불어 지역의 불균등 발전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선 일군의 사회학자들에 의해 촉발된 부산학은 이제 한 세대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그동안 부산연구원과 같은 정책연구기관에 부속된 부산학센터와 역내 유수 대학의 연구소에서 숱한 성과를 축적하였다. 또한 중등학교에서 자유 교과로 채택되고 대학에서도 교양 교과로 개설한 경우가 많다. 지역 정부도 지원 조례를 만들어 부산학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연구재단이 공인하는 부산학 관련 등재 학술지 ‘항도부산’을 꾸준하게 발간해 오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열기로 시작
자리 잡고 도시정책 반영 늘어

과거 기억에만 치우친 한계
부산학 시야 좁히는 부작용

부산은 다층적·역동적 도시
중심주의 해체, 여러 겹 인식을


민간의 독립 연구자와 대학 소속 연구자가 지닌 부산학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시민의 부산 이해력을 더하고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 등에 정책적인 활용도도 높여 왔다. 무엇보다 도시정책에 부산학의 성과를 반영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근대 문화유산 조사와 보존, 산복도로 르네상스, 감천문화 마을 재생, 피란수도 문화유산 확립 등등. 이쯤이면 이제 부산학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부산학의 도약을 위한 토론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부산학의 선구자들에 대한 정리가 없었던 바 아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가능한 부산학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바다가 나온다고 모두 해양문학이 아니듯이 부산을 말한다고 무조건 부산학이 되진 않는다.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이론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 역사학, 문학, 민속학, 사회학 등의 분과학문이 부산에 관한 사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렇지만 각 분과의 고증과 발견이 부산학이라고 하긴 미흡하다. 적어도 과거를 말하면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과거를 소환하는 일에 매달린 느낌이 크다. 다시 말해서 기억에 치우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 지향에는 어떤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다분히 심정적인 편향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오히려 부산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게 부산학의 시야를 좁히고 그 처지를 애처롭게 만든다. 현금의 부산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이 먼저인데 현재를 상실의 감각으로 대하다 보니 기원에 대한 노스탤지어만 비대하다.

부산학이 연약한 기억에 매달리는 데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상실, 가능성과 불가능성, 내부와 외부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들 사이를 횡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훼손되기 이전의 원형이라는 관념은 현실에서 쓸모가 없다. 지금-여기의 짜증스럽고 비루하며 거친 국면조차 껴안아야 할 과제이다. 다시 말해서 ‘남은 게 별로 없어, 가치 있는 장소가 거의 사라졌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부산학을 위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변증법적 생성으로서의 부산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사람의 좋고 뒤틀린 심사와 욕망은 물론, 날로 망가지는 공간도 부산학의 대상이라 하겠다.

본디 있었던 장소나 사실에 대한 그동안의 편향은 어쩌면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의지의 회피와 연관될 수 있다. 상실과 향수 사이에서 요동하는 부산학은 이제 접어 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가령 피란수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상기하면 비록 임시로 부여된 지위이지만 ‘수도’라는 중심성의 상실이라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처럼 동질적이나 공허한 여백이 있다. 부산 정신에 대한 논의나 정체성에 대한 동어반복도 마찬가지다. 마치 부산 정신이 어디엔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데 사실 그와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기억의 누적과 축적, 틈과 주름으로 가득한 형국이 부산의 실상이다. 그러니 정체성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이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중심주의를 만들 공산이 크다. 서울 중심의 일극 체제를 비판하면서 역내 중심을 세우려는 모순된 의식 말이다.

하나이면서 여럿인 부산은 다층적이며 역동적이다. 이를 혼란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정신과 정체성으로 획일화하려 한다. 기억상실증 환자쯤으로 취급하면서 기억이 필요하다고 강박한다. 부산학의 적이 된 부산학은 끊임없이 기억을 소환하고 유일한 관념을 구축하려 한다. 부산을 하나의 전체로 상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형태가 없는 무질서로 보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 안의 중심주의를 해체하면서 부산을 여러 겹으로 인식하는 방법적 접근을 경주해야 하겠다. 이럴 때 부산학은 국가 중심 시야를 넘어설 수 있고, 기장학, 서면학, 동래학, 영도학, 낙동강 유역학 등과 같은 단위들의 포괄도 가능하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