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뒷모습·하늘로 기록한 49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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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Day 7’. ⓒ고성, BMW 포토 스페이스 제공

코로나 시대, 멈춰버린 도시에서 49일.

사진작가 고성은 지난해 봄 미국 뉴욕이 ‘코로나 록다운(Lockdown)’ 되었을 때 49일 동안 사진을 찍었다. 바깥의 풍경이 아닌 집안, 작가 내면을 기록했다. 고 작가는 당시 뉴욕에 대해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봉쇄 조치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코로나로 봉쇄된 뉴욕 49일 담아
사진가 고성 ‘흰 바람벽이 있어’전

혼란스럽고 무기력했다. 영안실이 모자라 냉동 컨테이너에 시신을 보관하고, 그것도 부족해 일반 컨테이너까지 동원되는 상황까지. 20년을 살았던 뉴욕이지만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고 작가는 “건강까지 안 좋아져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명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홀로 집안에 갇힌 단조로운 일상에 규칙을 부여하고 그것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BMW 포토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신진사진가 프로젝트 고성 사진전 ‘흰 바람벽이 있어’는 감염병이 부른 고립 속에서 만들어진 한 개인의 기록이다. 49일이라는 날수는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49재’의 의미도 포함한다. 전시 제목은 작업하며 외로움을 견뎌낸 자신에게 위로가 되어 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가져왔다.

고 작가는 자신의 ‘매일’을 사진 세 장에 담았다. 세 장의 사진이 한 세트가 되어 의미를 가지는 ‘트립틱’이다. 49일 동안 총 49세트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8세트만 소개한다. 작가는 매일 아침 일어나 명상을 하고 난 뒤 작업대에 깔아둔 검은 천에 쌀을 뿌렸다. 쌀알이 뿌려진 모습을 사진에 담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다시 찍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찍었다.

작가는 “쌀알은 육신을 챙기는 것이며, 무질서한 현재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쌀알 사진은 우주처럼 보인다. 작가 뒷모습은 ‘존재’를 의미한다. “사건이나 현상은 그것을 관조하는 존재가 있어야 의미를 가집니다. 코로나 록다운으로 다른 모델을 쓸 수 없어서 제 뒷모습을 찍었죠.” 뒷모습은 ‘내가 만날 수 없는 나의 모습’으로 눈앞에서 인식하는 것 이상의 넓은 세계를 상징한다. 세 번째 사진은 하늘을 흐르는 바람,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고 매개하는 바람을 표현했다.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고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근원적인 것이 더 중요해지고, 다른 것은 부차적이고 가식적인 것이 되는 경험을 마주했다. “좋아하는 이승우 작가의 글에 부재는 인식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팬데믹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죠.” ▶고성 사진전 ‘흰 바람벽이 있어’=5월 8일까지 BMW 포토 스페이스. 051-792-1630. 오금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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