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영어 실력 키우려면 영어책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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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10년 이상 배워도 외국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한국인.”

우리의 영어 교육의 실태를 비판할 때 흔히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이다. 이런 현실의 원인을 두고 문법이나 독해 위주의 영어 교육 탓으로 돌린다. 또 회화를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 진짜 영어실력을 키우려면, 이른바 ‘찐(authentic) 영어’를 하고 싶다면 영어 책읽기를 강화해야 한다는 책이 나와 화제다. 우길주 부산교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쓴 가 그것이다. 우 교수는 지난 8일 의 인터뷰에서 이 책의 집필 계기부터 설명했다.

“시중에는 ‘엄마표 영어교육’ 책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이론이 없죠. 이렇게 따라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강의실의 영어교육 이론은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의실과 엄마표를 이어주는 ‘다리(bridge)’ 역할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책을 썼어요.”

우길주 교수 ‘오직 한 아이를…’ 출간
강의실-‘엄마표’ 영어교육 가교 기대
영어책 읽기 통해 어휘력 체계 키워야
유치원~초등 3년 시기 읽기 성장판 열려

■왜 영어책 읽기인가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 교수는 ‘어휘의 차이’라고 단언한다. 우 교수는 “말을 길게 한다고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어휘를 잘 사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영어책 읽기는 어휘의 체계적인 입력과정을 만드는 유일한 영역이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으면 ‘맥락(context)’ 안에서 어휘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각종 상황에서 ‘적확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수준의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어휘가 중요하다고 해서 무작정 반복적으로 단어를 외우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읽기 전문가들이 최고의 읽기 자료로 비현실적인 내용이 가득찬 스토리북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 스토리북을 재미 있게 읽어나가는 동안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의미가 쌓여간다. 특히 흥미를 갖춘 이야기는 어휘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보이지 않게 만들어지는 이 튼튼한 그물이 바로 맥락이다.

다만 영어에는 우리말에 없는 발음과 리듬, 억양, 강세가 영어 읽기를 다소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읽기 시작단계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소리내어 책읽기를 반복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법이 아이들의 영어 소리 체계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리터러시(Literacy)’의 교육의 중요성이 반복된다. 우리말로 ‘문해력’으로 번역되는 리터러시는 흔히 읽고 쓰는 능력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리터러시가 읽기와 쓰기는 물론 듣기, 말하기에다 감상하기와 발표하기 기능을 추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즉 실제 영어실력이 바로 리터러시이며, 리터러시의 6가지 기능이 읽기를 통해 세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저서를 통해 리터러시 능력의 핵심이 바로 읽기라고 역설하고 있다.



■영어책 읽기의 결정적 시기

우 교수는 아이들의 영어책 읽기 능력이 완성되는 시기를 소리와 문자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유치원 시절부터, 스스로 유창한 읽기가 시작되는 초등 3학년까로 보고 있다. 읽기의 핵심 기초능력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때가 읽기 교육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신경언어학적으로 볼 때 두뇌는 유아기부터 계속 발달하지만, 뇌 중량 증가는 14세부터 더디게 진행된다. 사춘기 이후에는 두뇌 발달과 대뇌 유연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습득과 학습이 동시에 이뤄지는 유치원 이후 초등 3학년 전후의 기간이 읽기 교육의 결정적 시기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읽기의 성장판이 열리는 시기에 기초 읽기 능력을 갖춘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읽기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다”면서 “평생에 필요한 학문적 기초 능력이 될 읽기 능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물론 결정적 시기를 놓친 아이도 학습과 전략적 책읽기로 어느 정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요점은 결정적 시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고생을 덜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기초 영어 읽기 능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20여 년 전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흥미로운 조사를 벌였다. 미국 의회의 요청으로 ‘국가읽기위원회(National Reading Panel)’가 소집되고, 과학적인 읽기 조사에 착수한다. 당시 사용된 교육 예산만 우리돈 6조 원에 이른다. 국가읽기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기초능력 읽기의 핵심 요소로 △음소인식 △파닉스 △유창성 △어휘 △이해력 등을 제시했다.

우 교수는 “이 다섯가지 핵심 능력을 유치원부터 초등 3학년 사이에 갖추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면서 “안타깝게도 우리 공교육 체계에서는 이 다섯가지 능력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혼란의 초등 3학년 영어교실

초등학생들이 정식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시기는 읽기 능력의 결정적 시기의 마지막 해인 3학년 때부터다. 사교육이든 방과후수업을 통해서든 읽기 기초능력을 갖춘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가 한 영어 교실에 함께 있는 것이다. 읽기 기초능력을 갖춘 아이는 영어가 너무 쉽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처음부터 통 문장으로 영어를 접하기 때문에 무척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 교수는 초등 3학년 영어 교실이 가장 학력차가 많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 공교육은 영어 읽기 능력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영어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기존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특히 지역 교육청에 좀 더 자율권을 주고 가장 효율적인 영어 교육 방식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고 말했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모든 아이의 읽기 능력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영어 읽기 교육을 하려면 아이 한 명 한 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옆집 아이가 원서를 줄줄 읽어내려간다고 해서 부러워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 교수는 ‘진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단에는 여러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리를 듣고 나누어 말하는 방식으로 음소인식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 또 초등 2학년의 유창한 읽기는 분당 대략 120~130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는지를 진단하면 된다.

우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서 단순 의사소통보다 읽기 능력을 기반으로 한 리터러시 교육이 이 시대에 더 중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이 시대를 빛과 어둠이 섞인 모호한 시간 즉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규정했다. 언덕 너머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런 시대에 리터러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요즘에 미디어가 넘쳐 나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집니다. 특히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생활 양식이 퍼지면서 사람의 진정성마저 잘 느껴지지 않죠. 이런 때에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주도적으로 살기가 어려워요. 좋아하는 것, 보고싶은 것만 보여주는 세상에서 리터러시는 분별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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