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잘나서 이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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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정치부장

잘난 이, 잘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승부는 가려졌다. 이긴 자는 환호하고, 진 자는 고개 숙였다. 썩 잘나지 않은 후보들, 딱히 잘하지도 않은 정당들이 승자와 패자로 갈라졌다. 새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은 그렇게 뽑혔다. 하지만 국민은 심판했을 뿐 어느 한쪽에 승리를 안겨준 게 아니다.

박형준 신임 부산시장은 당선 첫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가 저 박형준이 잘나서 또는 저희 국민의힘이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시 그는 뛰어난 정치 논객이다. 관전자의 시각에서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예리하게 평가했다. 선거 이튿날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보선 과정에서 잘난 후보, 잘한 정당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대로 누가 봐도 잘못된 모습은 비일비재했다.

4·7 보궐선거, 냉혹한 심판
선거 승자·패자 갈렸지만
진짜 이긴 승부로 착각은 곤란
패자는 오만으로 무너지고
승자는 상대 실패 딛고 일어서
국민은 다시 칼날 벼린다

유권자의 심판으로 패자가 된 여당은 남 탓만 하다 스스로 무너졌다. 부산시장 보선전에선 출발 시점부터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직 여당 시장들의 성추행 사태에서 비롯된 보선이라 입장은 처음부터 불리했다. 이어 여러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자 “네거티브 말고는 이길 도리가 없다”는 말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설마했지만 여당의 네거티브 전략은 점점 사실로 굳어져갔다. 더불어민주당과 김영춘 후보는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점을 말하기보단 상대방 흠집 내기에 더 많이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앞서나가던 박형준 후보에 갖은 의혹을 덧씌워 유권자들이 넌더리를 내도록 선거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여기에는 중도·보수층에 박 후보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 투표를 포기하게 유도한다는 전략이 숨은 듯했다. 지지 세력 내부 결집에 힘을 쏟기보다 상대 지지층 분산 작전에 공을 들인 모양새였다. 여당과 김 후보는 상대 후보를 겨냥한 도덕성 공세를 ‘시민을 위한 진실 규명’이라 포장하며 당당한 해명을 주문했다. 그러나 자신들을 향한 의문 제기엔 과민하게 대응했다. 민주당 부산선대위는 부산진구청의 김 후보 친형 땅 매입 특혜 의혹을 제기한 야당 국회의원을 서둘러 고발했다. 상대의 잘못을 들춰낼 자유를 주장하면서, 자신을 향한 비판엔 사납게 응수했다. 선거 패전 직후 여권에선 미국 뉴욕타임스에도 실린 우리식 표현인 이른바 ‘내로남불(naeronambul)’을 비롯해 ‘과도한 선민의식’, 오만 등을 자성하는 내부 비판이 이어졌다.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였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여당의 실패를 먹고 일어섰다. 자생력을 길러 살아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보선 직후 “국민의힘이 잘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부산시장 보선에서 국민의힘과 박형준 후보는 과연 희망적 대안으로 선택받았을까. 국민의힘이 선거를 눈앞에 두고 보여준 내부 분열은 부산시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당 지도부는 부산·울산·경남(PK) 숙원인 가덕신공항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국민의힘은 최대 지지 기반이자, 보선을 앞둔 지역의 염원을 앞장서서 무시하는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스스로 연출했다. 부울경의 입장에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국민의힘은 한동안 이어갔다. 선거를 제대로 치르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본격 선거전에선 박형준 후보의 특권적 면모가 불거졌다.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주거시설 해운대구 엘시티 소유를 둘러싼 의혹 등은 진위 여부를 떠나 시민들에게 괴리감을 심어줄 수 있는 소재였다. 엘시티를 보유한 ‘부자 시장’이 특권층이 아닌 보통 시민의 삶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지 반문하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엘시티 관련 특혜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박 후보는 ‘재혼 가정’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권자 입장에서 속 시원한 해법은 아니었다.

이처럼 여야 어느 쪽도 딱히 잘나거나 잘한 게 없는데 승패는 갈렸다. 국민의힘과 박 시장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라 착각해선 곤란하다. 오판으로 인한 오만은 자멸을 부를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국민의힘은 두드러진 대권 주자조차 손꼽기 힘든 지리멸렬 상태의 야당이었다. 보선 승리에 도취돼 직전의 위기의식을 잊은 듯 내부 갈등을 노출하는 국민의힘 모습이 벌써부터 한심스럽다. 뼈저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실패의 원인을 바깥 탓으로 돌리는 민주당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선거는 다시 시작됐다.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국민은 심판의 칼날을 다시 벼리기 시작했다.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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