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자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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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완패로 막을 내렸다. 복기해 보면 이번만큼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전면에 나서서 활약한 선거가 또 있었나 싶다. 박형준 새 부산시장은 ‘말’지 편집위원과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JTBC의 토론 프로 ‘썰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부산시장 선거에서 3위에 오른 정규재 후보는 한국경제신문 주필을 역임했고, 유튜브 ‘정규재TV’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패배한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MBC 기자와 앵커 경력으로 다진 인지도를 기반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민주당 선거를 진두지휘한 이낙연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국민의힘 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정진석 의원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논설위원을 지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다. 대체 기자 출신 정치인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 다 해 먹는(?) 것처럼 보일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언론인 출신은 모두 24명으로 8%를 차지한다. 기자 출신 국회의원의 비율은 제헌국회 20.5%를 시작으로 18대 국회까지 15% 안팎을 유지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협성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창간하고 기자와 주필로 활동한 언론인 출신이었다. 19대부터 한 자리 비율로 떨어진 것이 이 정도다.

외국으로 눈을 돌리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먼저 눈에 띈다. 존슨 총리는 타임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작된 인용 기사로 인해 해고되는 등 그저 그런 기자였다. 그러다 시사코미디 프로그램을 비롯한 방송에서 이름을 알려 오늘에 이른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라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합친 합성어가 사전에도 나온다. 이렇게 외국에도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요즘 기자들 앞에는 ‘기레기’라는 부끄러운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모든 국민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만, 기자들의 잦은 정치권 직행은 권언유착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존경받는 기자였던 리영희 선생은 “기자는 진실을 추구하는 직업이다. 기자는 강자의 입장에 서지 말고 권력에 한눈을 팔지 말아야 한다. 기자는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꾸려 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선생이 말한 기자정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반성해 본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전직 기자들에게는 ‘기자정신’이라는 초심을 자주 떠올려 달라고 당부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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