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ICT 해양수도, 부산을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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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해양을 정복한 국가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했다. 1405년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 시절, 명의 장군 정화는 62척의 배와 3만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항해에 나섰다. 그 후 1433년까지 28년 동안 7차례에 걸친 서양 원정인 ‘하서양(下西洋)’은 15세기 초 당의 막강한 국력을 상징한다. 명은 당시 세계 경제 규모의 30~40%를 차지했다. 지금의 유럽연합(EU) 전체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윤택한 세계 최강국이었다.

명, 대륙 안주하며 변방국가로
기후변화 중심축 역시 바다에
해양클러스터는 핵심 싱크탱크
메가시티 앞서 해양도시 구축을

그러나 그 후 명은 해양진출을 포기하고 대륙에 안주하고 말았다. 이미 큰 영토를 확보해서 더 이상 개척이나 확장의 필요성이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명이 해양진출을 포기한 뒤 몇 세기를 변방 국가로 주저앉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계 문명의 큰 축이었지만 바다로 나가지 못한 기술과 문명으로 결국 중국은 수 세기 동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대상국으로 전락해 서양문명을 답습해야 했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서구 열강의 해양진출은 곧 그 국가의 국력을 상징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해양진출은 서세동점으로 명명되는 대항해시대의 막을 올렸다. 정점을 찍은 것은 영국의 등장이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최강국이던 영국은 새로운 강자 미국에게 패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패권 쟁탈전은 해양개척에서 출발했고 세계 질서나 문명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듯 해양은 오래전부터 우주와 더불어 우리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프런티어로 여겨져 왔다. 해양은 지금도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의 장이란 얘기다. 과학적으로 볼 때 해양은 기후변화나 지구환경 변화의 중심축이다. 엘니뇨와 라니냐, 남방진동 등도 해양으로 인한 변화들이다. 해양에는 대기의 50배에 달하는 탄소가 녹아 있다. 때문에 해양이 조금만 변해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 이것은 곧 지구촌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근저에 해양이 있다는 것이다.

해양은 환경과 더불어 자원의 보고이고 물류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무한 잠재력을 가진 해양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창출하려면 첨단 해양과학기술이 필요하다. 해양과학기술은 새로운 먹거리와 신약개발까지 무한한 가능성을 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양을 도외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1년 총예산은 약 500조 원을 상회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예산은 불과 7조 원 정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우리가 해양국가가 아니라는 얘기다. 부산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산 영도에는 해양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 해양 관련 과학기술을 다루는 종합연구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립해양조사원, 해양환경관리공단, 해양대학교와 해양박물관까지 총 16개 기관이 모여 있다. 해양클러스터는 부산의 핵심가치를 창출할 싱크탱크다. 부산이 해양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핵심가치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한다면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각별히 살펴야 한다. 해양도시의 미래를 위해 부산이 해양클러스터에서 찾아야 할 키워드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이제 부산은 21세기형 4차 산업 시대에 맞는 ICT로 무장한 대항해시대를 열어야 한다. 해양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진 부산은 시대의 조류에 맞게 ICT를 탑재한 21세기형 대항해에 나서야 한다. 해양도시를 외치는 부산은 해양의 가치 창출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가. 지금은 그 대항해의 돛을 올리기 위해 긴장하고 준비할 때다.

최근 부울경 메가시티를 논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도권에 비해 활력이 떨어지는 부산, 울산, 경남이 재도약하자는 이 아이디어는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하다. 그렇지만 자칫 본질을 망각한 채 수단에만 방점을 둔 전략일 수도 있다. 인프라가 갖춰진 부산시를 모두가 인정하는 해양 도시로 만들지 못하면서, 부울경만 합쳐선 부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먼저 부산을 진정한 해양도시로 만든 뒤 차별화된 경쟁력과 지역 특성을 토대로 부울경을 논해야 한다. 부산이 진정한 해양도시가 된다면 그 동력 확보를 통해 부울경 메가시티도 자연스레 구축될 것이다.

부산이 해양강국으로 가는 길은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세계사를 다시 보고, 급변하는 ICT시대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추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런 전방위적 사유를 하지 않으면 부산은 해양에 갇힌, 말로만의 해양도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과연, 부산은 대한민국의 해양수도인가? 부울경의 선언적 외침을 뛰어넘어, 부산 자체가 지구촌 모두가 탐내는 해양도시가 되면 부산은 21세기의 해양수도가 된다. 21세기형 대항해시대를 열 부산의 항해는, 곧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항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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