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늦은 배웅’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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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새벽 2시 전화가 울렸다. “환자분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십니다. 오셔야 할 것 같아요.”

2019년 5월, 아버지와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택시를 불렀다. 기저질환으로 8년 간 입퇴원을 반복한 아버지의 상태는 그해 유독 나빴다. 의료진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흘 전에도 상태가 위중해졌다는 연락에 온 가족이 병원에 뛰어갔다 왔다.

소중했던 아버지와의 이별의 시간
‘애도’ 빼앗긴 코로나 사망자 유족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자리 마련
유족 ‘늦은 배웅’에 사회 관심 필요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간호사실 옆 집중치료실에 계셨다. “아버지”하고 부르니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다른 가족이 도착할 때까지 곁을 지켰지만 특별히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손을 주무르고 물을 조금씩 먹여 드릴 수 있을 뿐. 가족들이 도착한 뒤 1인실로 옮기고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사랑해요. 다음에 만나요.” 우리의 배웅을 받으며 아버지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 드셨다.

“코로나 사망자 유족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코로나로 상처 입은 사회를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했을 때 코로나 사망자 유족이 제일 먼저 눈에 밟혔어요.” 박혜수 작가에게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버지의 임종을 떠올렸다. 우리 가족이 가진 이별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했다. 동시에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한 코로나 사망자 유족이 얼마나 슬프고 또 아플지 알 수 있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중 우리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한 곳에 코로나 사망자의 유족이 있다. ‘비대면 임종과 선(先) 화장 후(後) 장례’. 코로나로 사망한 고인의 유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건네고, 가족의 죽음을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그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애도의 시간마저 빼앗긴 사람들. 4월 7일 0시를 기준으로 코로나 사망자 1756명. 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는 눈물 흘리는 유족이 있다.

부산일보는 박혜수 설치미술가, 부산시립미술관과 함께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망한 가족, 친구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나 고인에 대한 추억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함께 고인을 애도하고 남은 유족을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접수된 사연은 오는 23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이토록 아름다운’에 마련되는 애도의 공간에 비치된다. 또 <부산일보> 기사를 통해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늦은 배웅’ 프로젝트를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해서 사망자 유족, 친구, 지인의 사연을 모으고 있다. 첫 사연이 들어온 날이 기억난다. ‘하염없이 자식들만 생각하는 천사 같은 어머니’. 구글폼으로 접수된 사연은 짧지만 가슴이 아팠다. 코로나 사망자 유족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의료진, 장례 관계자도 만났다. 병원에 온 아들이 임종을 앞둔 아버지 모습이 보이는 간호사실 CCTV 화면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는 이야기는 슬펐다. 그 이야기를 해 준 수간호사도, 이야기를 듣는 기자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코로나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임종을 못한 분들의 사연도 들어오고 있다. 코로나가 부른 의료 공백으로 막내아들, 막냇동생을 잃은 유족을 만났다. ‘우리 ○○’가 얼마나 착한 아들이었는지, 얼마나 귀여운 동생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같이 대학생이 될 꿈에 부풀었던 친구는 ‘이해심 많았던 ○○’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박혜수 작가는 “고인과의 이별이 슬픔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늦은 배웅’ 프로젝트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사망자 유족들이 속마음을 터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사회가 그분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늦은 배웅’ 사연 접수(https://forms.gle/BAsuAZ3AkfGejHyk7)는 9월까지 계속된다.

“사랑했던 이에게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늦은 배웅에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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