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분장애 100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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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별처럼 빛나는 많은 위인 중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앓은 사람이 많지만,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경우는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 버린 것도 그렇지만, 그의 가문엔 유독 우울증 환자가 많았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도 우울증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그의 누이와 형제 역시 불행하게 생애를 마쳤다. 그와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도 우울증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손녀까지 스스로 생애를 마감했다.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 명성을 누린 헤밍웨이지만, 가문을 타고 내려온 우울증의 덫을 피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위인이나 천재들의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종종 이들에게 예술 작품 등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마음의 병을 앓았던 것은 어쨌든 개인적으로 보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요즘의 발달한 치료를 제대로 받았더라면 인류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런 우울증이니 조울증이니 하는 말은 물론이고 그게 병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요즘엔 이를 대표적인 기분장애 질환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관련 의학 지식의 확산과 더불어 최근 환자도 크게 느는 추세다. 사람들의 편안한 삶을 돕는 온갖 기물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최첨단 문명 시대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분장애 질환은 심하면 일상생활마저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최근 급증세라고 하니 정말 걱정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엊그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분장애로 진료받은 환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진료 인원은 2016년보다 무려 30% 가까이 급증했다.

무엇보다 20대 환자가 전체 약 17%로 가장 많았던 점이 눈길을 끈다. 치열한 대입 경쟁을 뚫고 사회로 나온 뒤에도 취업난과 주택난 등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과 고립감, 좌절감이 기분장애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20대는 물론 전 연령대에서 국민들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안 그래도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눈만 뜨면 곳곳에 ‘행복 담론’이 넘치지만, 진정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을 곳은 찾기 어려운 시대의 실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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