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육지책 ‘온누리 상품권 깡’ 코로나19 시대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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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상품권. 부산일보DB

부산 동구 수정시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과일 소매상을 하는 권 모(48) 씨는 요즘 하루 매출의 10%가량을 온누리 상품권으로 받는다. 권 씨 가게는 원칙적으로 시장 밖이어서 온누리 상품권을 받으면 안 되는 ‘비가맹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손님이 줄어든 상황에서 손님들이 내미는 온누리 상품권을 뿌리칠 방도가 없다.

전통시장 내 유통만 허용 불구
매상 아쉬운 비가맹 점주들
“수수료 떼지만 거절 어려워”
대상 점포 확대 등 대책 시급

이렇게 받은 온누리 상품권은 과일 도매상에게 흘러 들어간다. 권 씨의 경우 온누리 상품권을 자신의 가게에서 팔 과일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비가맹점 점주가 온누리상품권을 적법하게 현금으로 바꿀 방법이 달리 없다. 도매상은 건네받은 온누리 상품권을 서면 등지에 있는 ‘상품권 깡’ 상인에게 넘긴다.

부산 사상구 엄궁도매시장에서 청과물을 판매하는 한 모(53) 씨는“일주일에 모이는 온라인상품권 액수는 약 1000만 원 정도”라며 “특성상 외상이 잦은 거래처가 현금 대신 온누리 상품권을 내밀 때 그것마저 받지 않으면 장사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씨는 이번 달에도 온누리 상품권 현금화를 위해 서면에서 ‘상품권 깡’을 해야 했다.

상품권깡의 경우 환전에 5~10%가량의 수수료가 붙기에 상인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엄궁도매시장의 한 도매상은 “온누리 상품권 수수료를 떼주면 남는 게 없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장사를 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과 온누리 상품권으로 인한 피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온누리 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2009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유가증권이다. 상품권 종류는 5000원 권, 1만 원 권, 3만 원 권으로 구성된 지폐 상품권과 5만 원, 10만 원으로 구성된 카드형 전자 상품권 등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현재 온누리 상품권 발행액은 작년 4조 487억 원 규모였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올해 3조 원 이상 발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온누리 상품권 사용을 권유하고 있지만, 정작 가맹점이 전통시장에만 국한되면서 이처럼 ‘온누리 상품권 유통’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온누리 상품권 사용이 ‘가맹점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홍보 부족 등을 이유로 사정 모르는 시민들은 일반 가게에서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음성적 온누리 상품권 사용, 불법인 ‘상품권 깡’, 영세 상인 피해라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대상 점포를 늘리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 지역 각 기초의회도 온누리 상품권 유통과 홍보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구의회 이상욱 의원은 “시장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 사이에서 온누리 상품권이 ‘무용지물’이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며 “코로나19 상황으로 얼어붙은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온누리 상품권을 유통할 가맹점을 확대할 방안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진흥공단 관계자는 “온누리 상품권 발행 목적은 전통시장 활성화이어서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가맹점 확대는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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