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변화와 변태의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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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예전에는 아무 걱정도 고민도 할 필요 없었다. 그냥 주변의 여느 누구들처럼 정해진 자리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다. 대다수의 큰 흐름만 잘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따금 혹독한 추위가 찾아오면 우리 모두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숨죽이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이따금 잡은 손이 엇갈린 채 그대로 얼어붙어 다소 불편한 적이 있긴 했었지만, 다시 날이 풀리면 같이 출렁이면서 새로운 이웃과도 또 익숙해지면 될 일이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 변화는 불가피
여전히 틀에 박혀 꼼짝 않으려 해
새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 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예전과는 달리 너무 어수선했다. 주류와 비주류가 불명확하고,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할 많은 것들이 모두 뒤죽박죽이었다. 무엇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자리를 바꾸는 소리들로 요란했다. 도무지 가만히 자리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벌써 바로 옆자리 친구들의 얼굴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나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언뜻언뜻 익숙했던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내게 다가와 속삭이기도 했다. “거기서 나와서 나와 같이 날아가자, 세상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넓고 우린 어디든지 갈 수 있단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렴.”

결국 변화는 피할 수 없었다.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훨훨 날아갈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변화가 변화 같지가 않다. 변하는가 했더니, 다시 제자리이고, 무언가 바뀔 줄 알았더니, 사실상 바뀐 게 없어 보인다. 바뀌어 봐야 맨날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우리 얘기가 아니다. 물(액체)에서 수증기(기체)로의 ‘변태(變態)’를 겪고 있는 물 분자의 얘기다. 무수히 많은 분자들의 결합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고체-액체-기체의 상태 변화에 대한 얘기다. 온도와 압력의 변화에 따라 각 분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통계적인 구조 변화를 경험하며, 이를 ‘변태’라 한다.

언급하기도 민망하지만, ‘변태’는 원래 ‘이상 성욕자’와는 상관이 없었다. 말 그대로 ‘탈바꿈’이라는 뜻이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획기적인 생물학적 상태 변화나, 다이아몬드가 흑연이 되는 ‘상전이’도 포함하는 말이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떠 보니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로 시작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소설 <변신>의 원제목(독일어로 ‘페어반들룽’(Verwandlung), 영어로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이기도 하다.

상태가 변할 때, 각 분자들은 엄청난 운동의 변화를 통해 기체(수증기)가 됐다가 다시 액체(물)가 됐다가를 반복하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정한 요동을 경험한다. 하지만 시스템의 거시적인 양은 오히려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열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온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모든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개별 분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형국이다. 하지만 조급하다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코로나와 미세먼지, 급격한 지구온난화에 의한 대재난이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일상을 실감 나게 위협하고 있는 이 마당에 인구까지 절벽이다. 범지구적 혼돈 속에 급격하게 인구가 줄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가속하고 있는 수도권 집중 현상은 끝이 안 보인다. 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벚꽃 피는 순서로 폐교한다’는 현실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이유는, ‘변화’를 넘어 ‘변태’가 요청되는 외부 압력과 내부 온도의 꾸준한 상승과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며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우리들 때문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틀에 박힌 양적인 팽창을 이야기한다. 디지털과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발전이라는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면서도, 양적 팽창이라는 일방적인 입장에서 투자와 사람이 부족하다는 푸념만 되풀이한다.

정작 인구도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 명백한 미래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인구절벽이라는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대체에너지와 에너지 생산효율에는 온 사회가 열중하면서도, 소모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와 넘치도록 나오는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이제까지 생산되던 양만 그대로 두고 보면, 인구가 다시 ‘회복’되고 그만큼의 투자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인구절벽을 겪은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가 관건이다. 개별적인 변화를 넘어 이 사회의 가치가 달라져야 하는 ‘변태’의 기로다. 새로운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투표일 아침이다. 바꿔 봐야 똑같다는 말이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지만, 이 한 표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도 미얀마에선 누군가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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