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띠풀꽃 잠든 곳에 / 강영환(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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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묻힌 숲속 무덤가에 띠풀꽃이 피었다

바람 불면 꽃씨 하얗게 날려 숲을 채우고 흩날리는 백발로 죽은 자의 노래를 춤추게 하였다

그걸 홀로 가는 길이라 여기지 않든가

누구도 찾지 않는 무덤가에서 솟아오른 꽃이 창가에 안개를 심었다

유리에 젖어 잦은 눈물로 어두워지고 눈물은 세월이 가지 않아도 백발이 되고

바람에 출렁거리는 산동네를 지나서 안개는 담 밖을 넘어 들녘이 되었다

눈에 안개가 피거든 띠풀꽃이 보내는 그리움이라 여겨 달라 그대 낮고 높은 춤사위여

-시집 (2013) 중에서-


깊은 숲속이나 마을 언덕 무덤가를 지나다가 볼 수 있는 띠풀꽃은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다. 띠풀에 알이 배이면 ‘피기’라 하여 어릴 때 까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오후 내내 뛰어 놀다가 풀잎 속에서 잠들고 이슬과 함께 잠이 깨는 유년시절을 보낼 때에는 띠풀꽃의 장엄함을 알지 못했다. 꽃 주위로 잔털처럼 붙어있는 흰 솜털이 무섭기만 한 이유는 유독 무덤 근처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리라. 바람이 불고 띠풀꽃이 흔들리고 하얀 꽃씨가 날려서 무덤 주위가 안개처럼 하얘지면, 죽은 이의 눈물이 무덤 주위로 맴돈다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는 띠풀꽃 흔들림도 망자가 보내는 춤사위로 비춰진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스팔트길이 뚫려서 마을 길가 무덤도 사라진 풍경이 되어버린 지금, 깊은 숲속을 지나다가 띠풀꽃이 보이면 죽은 자의 그리움이라 여겨달라는 시인의 염원이 눈물겹다. 띠풀꽃 흔들림에 홀로 가는 시인의 길이 겹쳐져서 더욱 그렇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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