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부에 월세 내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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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얼마전 만난 50대 후반의 한 지인은 “세금때문에 다시 취업을 하게 됐다. 아파트 두 채로 내야 하는 세금만 억대에 육박해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해 서울과 수도권, 부산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했다. 여기에 정부가 공시지가의 시세반영 비율을 높인데 따른 보유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올해부터 폭탄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들이 적지않다.

집값 급등에 세금 폭탄…집단 민원 봇물
정부, 공시지가 기준·하향 조정 불가 입장
세금 안내는 노점상엔 재난금 지원 대조
노선 비슷한 정부만 세번째 아직 아마추어

일부에선 아파트 단지별로 ‘공시지가 하향 조정’을 위한 서명을 받거나 국토교통부에 하향 조정을 요구하는 집단반발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 19.08% 오른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22.7%)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다. 그동안 보유세 부담 가중은 일부 수도권만의 얘기였다. 하지만 부산과 대구, 세종 등 지방에서도 최근 집값 상승으로 공시가격 9억 원 이상인 종부세 대상이 급증했다.

부산의 경우 종부세 대상 주택이 1만 2510호나 된다. 수영구 삼익비치(비치아파트), 남구 W, 동래구 코오롱하늘채 등의 일부 아파트 단지는 공시가격 상승률이 70~80%에 달했는데, 보유세 급등 예고에 주민들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W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5억 원 대출 받아서 구입했는데, 공시지가가 현실화되고 나니 지난해 300만 원 정도 내던 보유세가 올해는 계산상으로 1000만 원으로 급등했다”면서 “1주택이라 살 집인데 실현도 안된 이익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맞나. 대출 이자에 월 100만 원 가량 정부에 세금까지 내야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상 집의 실소유주는 정부이고 거기에 사는 주민들은 세입자나 다름없다. 한쪽에선 “결국 내집 갖지 말라는 얘기인데, ‘모든 재산은 국가에 있다’는 인식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값을 잡겠다며 칼을 빼든 뒤 20여 차례 계속되는 정책에 전국 집값, 땅값 안 오른 곳이 없다. 다주택자를 세금으로 압박해서 매물을 내놓게 하고 이를 통해 집값을 낮추겠다는 현 정부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매물로 내놓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증여를 하거나 세금을 물고서라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징벌적 세금을 매긴 것은 두고두고 현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공시가격 상승은 보유세 인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강보험료, 주택연금 기준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집값을 올린 주체는 정부·여당인데도 1가구 소유주들까지 투기 세력으로 내몰고, 코로나19 등으로 실질적 가계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가구 부담이 증가하면서 여론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공시지가 현실화 방안을 유예하기 어렵다”고 잘랐다. 종부세 부과 기준인 공시지가 9억 원 이상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이들이 이번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주고객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현 정부들어 중산층 이상에는 징벌적 과세를 안기고 그 이하 계층에는 혜택을 주겠다는 이른바 ‘계층 갈라치기’와 ‘계층 편가르기’가 자리해있다.

실제 중산층 이상의 종부세 기준과 세율 조정에는 인색한 정부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표밭 계층에는 퍼주기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밝힌 ‘4차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 세금을 내지 않는 노점상이 포함됐고, 200억 원의 예산까지 책정하면서 반발이 적지않다. 7일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분히 선거용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이른바 ‘임대차 3법’도 그 못지않다. 하지만 일자리·전세 부족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여당을 지지해온 서민층까지 반발하고 있다.

노선이 비슷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부만 벌써 세번째. 이젠 국정 노하우가 좀 쌓였을 법한데 아직도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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