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무거워야 할 입, 가벼운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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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라이프부 부장

‘더 헌트’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평범한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는 “선생님이 성추행을 했다”는 한 여자아이의 거짓말로 인해 졸지에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소문은 전염병처럼 퍼졌고, 마을 사람들과 절친한 친구들까지 그를 외면하고 비난한다. 결국 결백이 밝혀지지만, 그는 예전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무심코 내뱉은 아이의 거짓말이 낳은 비극이다.

영화를 본 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오버랩됐다.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사설 독방에 갇힌 오대수(최민식 분). 종국에 그 원인이 자신이 가볍게 놀린 혀 때문임을 알고, 스스로 자기 혀를 자르는 엽기적인 자해를 저지른다.

‘세 치 혀는 백만 대군보다 강하다’는 옛말이 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도 전해 온다. 세 치밖에 안 되는 혀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나, 백신을 두고 근거없는 말들이 넘쳐난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주장과 언론 보도가 난무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괜찮냐”고 묻는 지인도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은 부작용이 크고, 20~30대 젊은이에게서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스트라제네카라는 유럽에서도 매우 기피하는 백신 종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접종되고 있다”라는 등의 발언을 정치권에서 툭툭 내뱉는다. 대한의사협회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접종하면 안 된다”고 대놓고 주장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혈전 유발 가능성과 부작용을 부풀려 보도하기도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부산의 대학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우려할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A대학병원은 직원 2100명 중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90여 명 외 2000여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가운데 40%가량이 이상반응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을 총괄한 교수는 “모두 근육통, 발열,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 경미한 이상반응이었다. 중증 부작용은 없었다”면서 “해열제를 복용하면 발열 반응이 빨리 가라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B대학병원 관계자도 직원 2000명 모두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논란이 됐던 혈전 유발설도 유럽의약품청(EMA)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는 국민이 68%에 그쳤다. 코로나시대를 종식하려면 집단면역(70%)을 형성할 만큼 백신을 맞아야 한다. 68%는 아슬아슬한 수치다. 누구보다도 무거워야 할 입들의 가벼움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 건강의 10대 위협 중 하나로 ‘백신 접종 주저하기(hesitancy)’를 꼽은 바 있다. 적어도 코로나라는 ‘공공의 적’에 대해서만은 진중한 발언과 보도가 필요한 이유다.

한 지자체 보건 담당자가 들려준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 자신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심한 고열로 고통스러웠다고. 그렇지만 모친에게 백신 접종을 꼭 권했단다. 백신을 안 맞는 게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ky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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