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4·3 헌화… “가족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보상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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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영도구 부산제주도민회관에서 제73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제주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처음으로 전국에서 제73주년 4·3추념식이 열렸다. 부산에서도 추념식이 열려 4·3사건으로 친할머니와 작은아버지를 잃은 송군자(81) 씨 등 유족과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해 정부의 추가 진상조사와 희생자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특별법 개정 후 첫 추념식 거행
친할머니 등 잃은 송군자 할머니
영도서 한평생 눈물의 나날 보내

3일 오전 10시 부산 영도구 대교동 제주특별자치도민회관에서는 ‘제73주년 제주4·3추념식’이 열렸다. 송 씨는 제단에 헌화를 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4·3사건이 발생한 1948년 당시 8살이던 그는 어느새 80대 노인이 됐다.

올해 추념일은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고 지난달 23일 공포된 뒤 처음 맞는 날이다. 특별법 전부 개정안에는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위자료 지급, 불법 재판 4·3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 추진,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 명예회복, 트라우마 치유 사업 등에 대한 근거가 담겼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서 해녀의 딸로 살았던 송 씨는 ‘폭도 가족’이라 불리며 고통받았다고 증언했다. 송 씨의 셋째 삼촌이 남로당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송 씨는 “어느 날 ‘폭도 가족은 성산동국민학교로 모이라’고 해서 엄마가 우리 남매들은 외갓집에 맡겨놓고 친할머니와 그곳에 갔었다. 엄마는 감시자가 몰래 풀어주어서 살았다. 그곳에서 7~80명이 죽었는데 할머니 시신은 못 찾고 비석만 세웠다”고 말했다.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성산동국민학교는 서북청년단 특별중대의 주둔지로 쓰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송 씨의 막내 삼촌은 산으로 도망간 셋째 삼촌을 찾으러 나섰다 군경에게 붙잡혔다. 이후 그는 비자림에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채 발견됐다. 온 제주가 광풍에 휩싸이면서 송 씨 가족은 부산으로, 일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영도구 영선동에 자리를 잡은 송 씨 부모님은 배를 타거나 물질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송 씨는 “제주를 떠나 영도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매년 4월만 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면서 “특별법이 개정됐지만 이념 갈등에 가족을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송 씨는 올해 유족 등록을 결심했다. 4·3사건 유족임을 보증해줄 보증인 조건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당초 4·3사건 당시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던 보증인 자격이 개정안에서는 희생자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4·3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으로 확대됐다. 한편 2000년부터 2018년 제6차 신고까지 총 9만 4985명이 희생자와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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