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유력 신문사의 부수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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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언론계에서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3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신문 부수 인증기관인 ABC협회에 대해 감사를 벌여 협회의 부수 자료가 상당 부분 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서울의 유력 신문사가 부수 조작에 가담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ABC협회와 해당 언론사를 고발하면서 파장은 커졌다.

신문은 수입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한다. 신문 유료부수는 광고 가격을 매기고 사회적 영향력도 평가하는 지표 구실을 한다. 이 점에서 부수 인증은 신문업종을 지탱하는 생명과 같은 장치다. 부수 조작은 언론과 광고주, 독자를 잇는 신뢰의 고리를 깨뜨리는 중대한 범죄다.

광고 겨냥 부수 조작, 언론 신뢰 하락
신문 구독률, 온라인에 밀려 급감
신문사 경영난 콘텐츠 질 저하 우려
신문법·미디어 정책 현실 반영해야

신문업계에서 부수 조작은 사실 역사가 꽤 오랜 관행이었다. 실제 배달부수보다 많은 양의 신문을 인쇄해 즉시 폐지로 처리하거나 홍보용으로 마구 뿌려 부수를 늘리는 수법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신문사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꼼수였다. 부수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다 보니 광고가 마케팅 효과와 무관하게 집행되어 신문 광고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신문 간의 부당 경쟁이 제 살을 갉아먹는 양상으로 번진 셈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언론사는 이 사건에 침묵을 지켜 빈축을 샀다.

신문사들이 전근대적이고 근시안적인 내부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신문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구독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신문사는 조만간 존립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이용률은 1993년에 87.8%이던 것이 2010년에는 52.6%, 2020년에는 10.2%로 추락했다. 이제 뉴스 이용 경로는 거의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유튜브를 뉴스 매체로 인식하는 비율도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뉴스 자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종이든 온라인이든 뉴스를 보는 비율을 합산한 결합 열독률은 89.2%로 여전히 높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의 출처가 주로 전통적 언론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문의 미래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신문사들은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신문은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반면 국내 대표적인 포털인 네이버는 불과 20년 만에 시가총액 3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포털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75.8%에 달했지만, 언론사 사이트나 앱을 통한 구독은 12.4%에 불과했다. 지금의 거대기업 네이버를 키운 일등공신은 신문사다. 포털은 모든 신문사가 헐값에 제공한 기사로 이용자를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포털보다 온라인화를 먼저 시작했음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전투구식 경쟁에 몰두한 신문업계의 짧은 식견 탓이다. 신문의 곤경은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뉴스 생태계 전반의 부실과 여론 형성 과정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신문이 큰 비용을 투입해 뉴스를 생산하면 그 과실은 네이버 같은 뉴스 플랫폼 기업이 독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는 분명 문제가 있다. 신문사 경영이 부실해지면 뉴스 콘텐츠 전반의 질이 갈수록 하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책 역시 이러한 문제를 감안해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미디어 정책은 종이신문 시절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다국적 포털사인 구글의 뉴스 검색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등 다각도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걸음조차 떼지 못한 상태다.

글로벌 기업인 구글은 한국에서도 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 사업자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아 아무런 법적 책임도, 세금도 부담할 필요가 없다. 2019년 서울시에 사업자 등록을 하려 했으나 본사가 미국에 있어 등록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됐다. 플랫폼 기업엔 국적이나 소재지가 아무 의미가 없다. 신문법이란 제도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신문의 미래는 종이가 아니라 온라인에 있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신문사 차원의 혁신 노력도 필요하지만, 미디어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변화나 정책 방향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뉴스 소비가 온라인으로 옮아간 변화를 반영해 정책의 틀도 바꾸고, 부수 인증을 넘어 종이신문과 디지털 구독을 통합해 효과를 산정하는 새로운 지표도 개발해야 한다. 신문사 역시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넓게 봐야 미래가 열릴 것이다. 업계 내부의 경쟁에만 몰입해 부수 조작이나 일삼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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