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복장’서 영감 받은 명품 패션 브랜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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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그리고 패션 Ⅱ/남보람

“역사적으로 그 시대 최고의 패션리더는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이 말에 당신은 공감하는가?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른다. 하지만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멋짐’은 일반인에게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야말로 가지고 싶은 물건 ‘워너비’였다. 또한 그 멋짐과 쓰임새는 때론 디자이너와 유명 인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 시대 최고 패션리더는 군복 입은 군인
미 해군 티셔츠, 말론 브란도가 유행 주도
스위스 근위대 복장, ‘화려한 패션’ 자랑
군복, ‘인간 중심적 진화’ 지금도 진행 중

실제 예를 하나 들어보자. 1913년 미 해군은 병사들에게 상의의 팔을 짧게 자른 반팔 속옷 상의를 나눠주었다. 목 주변을 라운드 처리하고, 어깨 아래에서 팔을 잘랐으며 소재는 순면이었다. 사람들은 이 속옷을 T자 모양으로 생겼다고 티셔츠라고 불렀다. 한데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역한 예비역들은 자신의 군복이나 군장류 일부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들은 여러 이유에서 군복을 입고 생활했다. 튼튼한 군복 바지 위에 하얀 티셔츠를 입으면 본인은 편했고, 보는 이는 든든했다. 티셔츠는 이렇게 참전자들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으로 나온 티셔츠를 소위 ‘핫한 잇템’으로 끌어올린 것은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였다. 1951년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란도는 독선적이고 무례하며 폭력적인 남자 스탠리 코왈스키로 분하여 열연했다. 영화에서 말론 브란도는 줄곧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데, 영화 개봉 후 말론 브란도의 인지도와 함께 티셔츠의 인기도 수직 상승했다. 말론 브란도 외에도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가 티셔츠 대열에 동참하면서, 티셔츠는 젊은 반항아의 상징적 복장이 되었다.

<전쟁 그리고 패션 Ⅱ-메디치 컬러의 용병들>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저자가 지난해 Ⅰ에 이어 전쟁과 패션과의 관계를 다룬 그 두 번째 책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전쟁이 패션과 무슨 상관일까 하겠지만, 상관있다. 쓰고, 입고, 신고, 들고, 메고, 매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이 군복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나아가 소위 명품도 영감을 받는 게 군복이라 얘기한다.

‘교황 스위스 근위대’의 복장 이야기도 흥미롭다. 스위스 근위대의 복장은 그 화려함으로 단순히 군복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명품 패션’으로 통한다.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청 통제를 받아 교황을 경호하는 것이 주 임무다. 한데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장이다. 이것을 ‘란츠크네히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란츠크네히트’의 원래 뜻은 ‘독일 용병’이다. 스위스 용병에 뿌리를 둔 근위대에 독일 용병이라니, 쉽게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16세기 독일 용병 란츠크네히트는 화려한 패션으로 명성을 누렸다. 이렇게 되자 17세기에는 독일 용병을 지칭하는 란츠크네히트는 ‘용병들이 입는 화려한 복장’을 뜻하는 의미로 바뀐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교황 스위스 근위대의 복장은 화려하다. 그래서 본래는 독일 용병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용병들의 화려한 복장으로 뜻이 변한 란츠크네히트를 스위스 근위대에 붙일 수 있는 것이다.

패션으로서의 위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명품 브랜드도 있다. 바로 발렌티노다. 1960년에 론칭한 발렌티노는 과감하고 현대적인 시도들로 1970년대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발렌티노는 위장을 적용한 강렬한 이미지의 여성용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위장복 패션으로 무장한 힙합 대부, 사파리 재킷을 입은 작가와 왕자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의 패션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들의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모방되고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군복도 있다. 그것은 순식간에 ‘패션’이 되었다.

저자는 “군복은 이미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군복은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조금 더 실용적으로, 조금 더 합리적으로, 조금 더 인간 중심적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왔고, 지금도 진화 중인 만큼 편하고 편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군복을 두고 저자는 “살아남기 위한, 승리하기 위한 PASSION(열정)이 만들어낸 FASHION(패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숨은 군복 찾기’에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이번 책은 Ⅰ도 아니고 Ⅱ다. 하지만 <전쟁 그리고 패션Ⅰ-샤넬을 입은 장군들>을 아직 못 읽었다면, 그리고 패션에 좀 관심이 있다면, 이참에 함께 챙겨 읽어도 좋을 듯하다. 접근 방식도 신선하다. 남보람 지음/와이즈플랜/324쪽/1만 8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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