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부산 없는' 부산시장 선거, 유권자가 바로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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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의 날이 밝았다.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의 경우 부산 읍·면·동 205곳에 사전투표소가 마련되었고, 2~3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전투표를 할 수 있다. 보선 당선자는 내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새 시장이 취임하는 7월 1일까지 1년 3개월간 부산시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야말로 빈자리를 채우는 보궐(補闕)의 선거다.

시간이 너무 짧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게 3월 25일인데, 일주일 만에 후보자를 선택하라고 강요당하는 것 같아서다. 4월 7일 선거일까지 간다고 해도 선거운동 기간은 고작 13일이다. 아무리 1년 3개월짜리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라지만 공약을 살펴보거나 제기된 의혹을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치인의 선거운동 편의만 있지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 시간표다.

4·7 재·보선 사전투표, 2~3일 돌입
후보 검증엔 턱없이 짧은 선거 기간

‘지방 없는 지방선거’ 이번에도 재현
정권 심판이냐 안정이냐, 구도 짜여

지방소멸·중앙정치 굴레 벗으려면
유권자가 정책선거로 돌려놓아야


흔히 선거의 3대 요소로 구도, 인물, 이슈를 꼽는다. 선거운동 기간이 짧으니 인물과 이슈는 뒷전으로 밀리고, 노회한 선거기술자가 짜 놓은 구도가 승패를 결정짓는 게 한국 정치의 관행이었다. <부산일보>와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18세 이상 부산시민 10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4차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결정 요인으로 공약(16.8%), 인물(10.6%)보다 구도인 ‘정권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을 꼽은 응답자가 28.6%로 가장 많았다.

겉으로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우리 편이냐 남의 편이냐로 갈리는 거대 양당 체제는 선거 운동에 있어 구도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다. 이쪽 아니면 저쪽의 편 가르기식 정치는 지지자를 결속하기 좋고, 공약이니 검증이니 하는 골치 아픈 선거운동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소수정당의 정계 진입도 막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번 부산시장 보선도 중앙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을 여야 후보로 내세우면서 정권 안정이냐 정권 심판이냐는, 다분히 내년 3월 9일 막 오르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하는 구도를 일찌감치 선보였다.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을 다시 뽑는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구도라는 ‘기술’을 걸었다고 보는 게 옳다. 여당 출신인 대한민국 제1, 제2 도시 시장들이 성추행으로 낙마하자 정권을 다시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서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라는 당헌에다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추가함으로써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정점을 찍었다.

여당에서 득세한 ‘정권 안정론’ 방패에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권 심판론’이라는 창으로 응수했다. 시절 운이 야당 편인지 정부의 잇따른 실정에다 ‘LH 사태’ 등 공직자 부동산 투기로 국민의 분노도 하늘을 찔렀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소극적인(?) 선거운동인 정권 심판론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여당 후보를 압도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정권 심판론이라지만 부산시장 자리를 내년 대선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고개를 들 정도라는 점이다.

귀에 익숙한 ‘지방 없는 지방선거’라는 말은 서울과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과 지방정치의 식민성을 웅변한다. 정권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이라는 구도가 핵심 변수로 떠오른 부산시장 보선은 ‘부산 없는’ 선거로 굳어 가고 있다. 올해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맞아 ‘자치분권 2.0시대’를 운위하는 마당에 부끄러운 일이다. 지방 없는 지방선거가 지방소멸을 낳았듯, 부산 없는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소멸’을 가속할 뿐이다.

선거운동의 완성은 투표이고, 투표는 유권자의 몫이다. 선거판이 선거기술자와 정치꾼들이 만든 특정한 구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구도를 받아들일지조차 유권자의 몫이다. 부산 없는 부산시장 선거의 비정상까지 판단해야 할 몫이 유권자에게 더해졌다. 부산을 위한다면 구도에도 사회적 거리를 두고 부산의 미래를 맡길 인물과 정책을 살펴야 한다.

사전투표소에 가기 전에 집에 도착한 선거 공보물부터 살펴볼 일이다. 구체적인 예산과 추진 일정을 제시한 선거 공약인 매니페스토(manifesto)에 부합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후보 검증을 위해 선거운동 기간을 한 달 이상 늘리도록 법 개정을 추동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선거 때 제기된 고소·고발과 각종 의혹이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자세도 요망된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의 부산에서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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