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미의 문화본색] 딕션과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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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기자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 기자라면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는 게 기본일 테고, 음악가라면 악보를 파악하고 무대에 오르는 게 기본이다. 최근 부산에서 무대에 오른 극을 보고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뻔한 명제를 떠올렸다.

신진 연기자부터 중견 연기자까지 다양한 배우가 한 무대에 올랐는데 너무나도 확연하게 ‘딕션’ 차이가 나서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쳐온 중견 연기자는 그 세월이 말해주듯 명확한 딕션을 통해 내용을 잘 전달했다. 반면 신인급 연기자의 대사 전달력은 관객 입장에선 다소 아쉬웠다.

‘딕션(diction)’이란 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이라는 뜻으로, 왜 딕션이 배우의 기본기인지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무대였다. 딕션이 배우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딕션이 좋은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졌다. 대사 전달력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딕션의 책임이 온전히 배우에게만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영상을 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한국영화나 드라마도 언제든지 자막을 켜서 감상할 수 있다. 대사 전달을 오로지 배우의 딕션과 발성에만 의존하던 시대와는 환경이 달라진 셈이다.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보면서 굳이 자막을 켜는 행위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테다. 모두가 시청 환경을 영화관급으로 꾸며놓을 수 없을 테니 아쉬운 사운드를 보강하기 위해 자막을 켜는 사람도 있겠고, 대사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켜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MZ세대가 자주 찾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요즘 한글 자막이 없으면 드라마 보기가 어렵다”거나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보면 대사가 잘 안 들려 답답하다”, “딕션 좋은 배우가 별로 없다”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자막 켜고 한국어 콘텐츠 보기’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발성 좋은 배우가 더욱 중요해졌다. 집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에 굳이 공연장에 가서 극을 보는 관객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기본은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2년 만에 관객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를 취재차 다녀왔다. 이곳에서도 딕션의 중요성을 느꼈다. 세계 초연한 복합장르극 ‘디어 루나’의 에필로그 무대는 70대의 가수 정미조가 장식했다. 그가 37년 만에 가수로 복귀하면서 발표한 곡 ‘귀로’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분명 노래였지만 한 편의 시 같았고, 명확한 딕션으로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기본기를 갖춘 가수의 명품 무대였다. 기본기가 이렇게 중요하다.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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