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노후 아파트 ‘보수 지원’ 가로막는 중구 ‘지원 조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부산 중구 영주동 청운아파트. 1976년에 지어져 노후화가 심각하다.

고도제한에 묶여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부산 중구의 한 노후 공동주택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해있다. 지원 조례가 있지만, 취지를 살리지 못한 기준 탓에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인근 지자체의 유사한 조례 기준으로는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탁상공론 행정’이 주민들의 ‘주거 불평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1976년에 지어진 부산 중구 영주동 청운아파트. 31일 취재진이 아파트를 둘러보니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바닥과 벽면 균열이 눈에 띄게 드러나 있었다. 지난해 여름 폭우 때는 아파트 외벽 균열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준공 45년 영주동 청운아파트
벽 균열로 누수 소동, 보수 시급
입주민 80% 65세 이상 ‘경제난’
구 지원조례상 ‘30세대 미만’ 대상
동구는 99세대 아파트 지원 대조

입주민 사이에는 아파트 보수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결국 보수를 포기하고 살기로 했다. 입주민 대부분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노년층이라 지원금 없이는 본격적인 보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입주자 대표 황보 모(48) 씨는 “전체 60세대 중 80%가 65세 이상”이라며 “도색비용이 약 2000만 원 드는데 입주민 대부분이 노령층이라 1만 원씩 모으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또 “가장 시급한 옥상방수나 지반 침하 보수 공사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중구청은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과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 조례를 통해 노후 아파트 보수를 지원한다.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 지원 대상은 주택법을 기준으로 20세대 이상,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은 건축법을 기준으로 30세대 미만의 노후 주택이다.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 방수, 도색 공사 등 보수 비용에 최대 8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청운아파트의 경우 두 조례의 지원 대상에서 모두 제외된다.

세대수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60세대인 청운아파트는 ‘20세대 이상’ 기준을 적용하는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 대상이다. 하지만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은 주택법에 근거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주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준공 당시 건축법에 근거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청운아파트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건축법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을 적용하자니 세대 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유사한 조례가 있는 다른 구의 기준은 다르다. 동구청도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 지원’ 사업을 벌이며, 20세대 이상 노후 공동주택을 지원한다. 하지만 중구와 달리 노후주택의 과거 사업계획승인 기준이 빠져 지원폭이 넓다. 지난해 6월 동구 초원아파트는 5,6동의 옥상 및 외벽 방수공사를 위해 동구청으로부터 990만 원을 지원받았다. 준공 일자는 1976년이다. 같은해에 지어져 현재 99세대가 살고 있는 동남아파트도 배관설치 공사로 지난해 7월 1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청운아파트가 동구에 있었다면 공동주택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공동주택 관리지원사업의 취지는 자력으로 정비하기 어려운 노후 아파트를 구청이 지원해 주는데 있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조례의 기준을 우선하는 것은 사업 취지와 동떨어진다”고 밝혔다.

의회에서도 ‘무용지물’이 된 공동주택 관리지원 조례를 지탄하는 목소리를 나왔다. 중구의회 강희은 의원은 “중구는 고도제한이 걸려있어 재건축이 어려운 데다 노후 아파트도 많다”며 “자비 보수가 어려운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노후 공동주택에 대한 지원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조례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구청 관계자는 “조례 해석에서 ‘지원 사각지대’가 생기는만큼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지원 사업의 지원대상 인원을 30세대 이상으로 조정하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