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민심이 '한 방'에 얻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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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가 지난해 말 기자에게 밝힌 부산시장 선거 전략 중 하나는 시민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는 것이었다. ‘30년 부산 권력을 장악한 야권과 3년 전 처음 집권한 여권 중 누가 부산을 더 많이 바꿨나?’. 집권 기간 대비 성과 측정, 이른바 ‘권력의 가성비’를 한번 따져보자는 거다. 이 인사는 “우리가 불리한 선거인 건 분명하지만, 제대로 논쟁이 붙는다면 시민들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 근거인즉, 부산의 2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을 불가역적인 단계로 끌어올린 게 첫 번째고,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역사로, 원도심의 지도를 바꾸고 있는 북항재개발 사업이 두 번째였다. 여기에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항할 부울경 메가시티라는 거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3개 시·도 단체장이 여당 소속으로 바뀌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야당의 경우 문정수, 안상영 시장 시절인 2000년대 초반까진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부산 신항만 건설, 해운대 신시가지 개발 등 부산의 현재를 만든 굵직한 사업들을 해냈지만, 이후 15년 동안 시정을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가 있느냐고 이 인사는 반문했다. 엘시티를 비롯한 해운대 일대의 마천루는 소수 부유층의 재산 증식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전체 시민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느냐고도 했다.

‘권력 가성비’ 논쟁 준비하던 與
‘한 방’ 노린 검증 공세에 ‘올인’
실망 쌓인 민심엔 되레 역효과
실력·비전 경쟁 실종된 선거 유감

일부는 수긍되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두 진영의 능력과 비전을 비교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논쟁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의 선거전이 부산 유권자들의 뇌리에 남긴 건 무엇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여권이 쏘아 올린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관련 의혹일 것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가장 큰 폐혜는 그걸 제외한 모든 사안을 부차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3월 한 달 여권의 총공세에도 여론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30일 발표된 <부산일보>·YTN의 4차 공동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이전보다 더 벌어졌다. 중도층마저도 여권의 검증 공세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여권은 결정적인 한 방만 확인되면 이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정말 그럴까?

2007년 대선의 최대 쟁점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설립 의혹이었다. BBK는 2002년 상장폐지 직전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회사인데, 이 후보와의 관련성만 확인되면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다스 실소유 의혹 등이 줄줄이 풀리면서 ‘게임 끝’이라는 게 여권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선거 막판 이 후보가 한 강연에서 “제가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하는 동영상을 기어코 찾아내 공개했다.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이 후보는 대선 사상 최대 표차로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눌렀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 여기에 기업인 출신 ‘경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등이 중층적으로 쌓여 형성된 이 후보 지지 여론은 결정적 한 방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도 비슷해 보인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주거비 폭등으로 삶은 팍팍해지고, 여권의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에 피로도가 쌓여가던 차에 터진 ‘LH 사태’가 정권 심판론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이런 불리한 형세를 여권이 한 방 요행수로 뒤집으려 한다는 게 시민들의 생각인 듯하다. 도덕성 검증이 무용하다는 게 아니라 사안의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박 후보가 기세등등할 일도 아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엘시티 아파트 위아래층 2채를 가족들이 한날에 매입하고, 아들의 회사는 엘시티에 18억 원짜리 조형물을 납품했다. 엘시티와 무슨 관계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장 미술관 부지에 고급 주택 같은 건물을 지어 4년 동안 등기를 하지 않은 것도 단순 실수라고 눙치기에 사안이 작지 않다. 시장 도전자의 주변 관리치고는 아쉬움이 크다.

열띤 도덕성 공세에도 되레 여론이 악화되자 여권이 31일 일제히 “잘못했다”며 읍소에 나섰다. 선거 직전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을 시민들이 곱게 받아들일지는 회의적이다. 선거는 이미 어떤 ‘기술’로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왔고, 일주일 뒤면 최후 승자는 가려진다.

다만 가덕신공항 성사를 계기로 지역 회생의 그랜드 디자인을 다시 그릴 최적임자를 선택해야 할 이번 테스트가 무성한 의혹만 남긴 채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 같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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