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똑똑한 유권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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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상 바꿀 ‘진짜배기’ 가려내는 건 ‘우리의 몫’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마중물이 된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부산시 선관위 직원들이 게재할 선거 벽보를 점검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4·7 재·보궐 선거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재·보선은 전국에서 가장 큰 두 도시의 광역단체장을 뽑는 것을 포함해 제법 큰 규모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의미는 정치인이 시민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데 있다. 지역의 일상부터, 한국 사회의 역사적 향방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똑똑한 유권자의 밝은 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재·보선 정국 뒤흔든‘LH 사태’
부동산 이슈에 다른 공약 묻혀
중앙정치 대리전 된 지방선거
자칫 ‘묻지마 투표’ 변질 우려

지도자 덕목·자질 잘 살피고
민생 챙기기·균형발전 실천할
제대로 된 정치인 뽑을 때

‘그놈이 그놈’ 체념은 경계 대상
지방 살림살이 나아지길 바라면
마지막까지 정책·인물 따져야


■한 표의 소중함

재·보선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재·보선은 당선 무효나 사망, 사직 등으로 선거의 사유가 확정된 곳에서 실시된다. 이번 선거는 서울·부산시장 말고도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등을 뽑기 위해 전국 21곳에서 치러진다. 중앙정치 중심의 혼탁한 싸움으로 어지러운 지금, 이번 재·보선은 한국 정치를 지역 중심 어젠다로 바꾸는 관점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선거다.

특히 한 표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875년 프랑스에서 대혁명 이후 왕정에서 공화국 체제로의 전환을 놓고 투표가 실시됐다. 왕정파와 공화파의 국회의원은 353명으로 동수. 왕정파 한 사람이 투표에 불참하면서 1표 차이로 프랑스는 공화국이 된다. 그렇게 역사의 운명을 바꾼 한 표의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번 재·보선 투표일인 4월 7일은 임시공휴일이 아니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표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선거 당일 투표가 힘들 경우 사전투표를 하면 된다. 2~3일 이틀간(오전 6시~오후 6시)이다. 다만 관외 사전투표는 재보선이 치러지는 지역에서만 할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도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거소투표를 통해, 혹은 특별사전투표소에서 가능하다. 부산에는 부산시 인재개발원 내에 특별사전투표소가 설치된다. 기본적인 후보자 정보와 정책·공약 등은 각 가정에 배달된 선거공보에 나와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부산시선관위 홈페이지(bs.nec.go.kr)를 참고하자.



■지도자의 자질을 꿰뚫어라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어떤 후보는 ‘정의’가 부족하다 하고 또 어떤 후보는 ‘소통’이 아쉽다는 평가가 오간다.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나 지도자를 뽑을 국민 양쪽 모두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이다. 이는 조직을 발전시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첫손에 꼽히는 것이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지도자는) 선과 악의 양면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매사를 냉철하게 판단하되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 역시 지도자의 덕목으로 굳셈과 눈 밝음, 곧 ‘강명(剛明)’을 들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지도자 자질의 또 다른 축으로 꼽는 것이 봉사로서의 권력 개념이다. 권력이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적인 계획을 집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국민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이다. 그래서 민주 국가의 지도자라면 응당 정성을 다해 민의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공감력’이다.

“권력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라는 관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름다움의 요체는 바로 ‘정의’다.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돕는 것을 최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게 정의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는 대홍수가 지나간 뒤 새로운 유형의 인류를 창조하려 했다.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새로 태어나는 인간들에게 ‘정의감(dike)’과 ‘수치심(aidos)’를 주었다고 한다. ‘올곧음’과 ‘겸허함’. 이번 선거의 후보들에게도 능히 가늠해 볼 만한 잣대가 아닐 수 없다.

이 밖에 위기에 대응하는 철저한 현장주의, 능력 있는 사람을 적극 발탁하는 탕평 인사, 시대 흐름을 읽고 새로운 방향성과 장기적 비전을 캐내는 노력도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규칙과 절차·지위·사람이 권력을 중심으로 엉킨 관료 사회도 통솔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지도자의 이런 자질을 가려낼 안목이 요구된다.



■부산의 미래를 견인할 후보는?

이번 재·보선을 뒤흔든 대형 이슈는 단연 부동산이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 실정과 LH 사태의 여파가 크다. 그 바람에 지방 선거의 이슈가 묻혔다.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면 그만’ ‘흠집 내기’ 식 이전투구에 빠진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책 경쟁과 인물 검증은 없고 막말과 정치 혐오만 넘쳐나는데, 그렇다고 우리 유권자들이 ‘묻지 마 투표’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양강 구도를 형성 중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공약 우선순위는 공히 ‘경제’ 부문에 몰려 있다. 김 후보가 가덕신공항·부산신항·철도를 잇는 이른바 트라이포트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박 후보는 산학협력을 통한 청년 일자리 해결에 중점을 둔다. 임기가 1년 3개월 정도임을 고려해 어떤 공약이 정책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유권자의 꼼꼼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밖에 재난·재해·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녹색도시’와 시민의 다양한 문화·여가 활동을 보장하는 ‘글로벌 해양문화 도시’(김 후보), 50개 생활 권역별로 공공시설을 조성하는 ‘15분 도시’와 도심형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어반루프’(박 후보) 같은 차순위 공약들도 있다.

어떤 정책이 부산에 더 시급하고, 보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인지 따져 봐야 하고, 나아가 부산의 대전환을 이끌어 갈 비전이 있는 후보, 지역균형발전과 일자리 창출 전략이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유권자 무서운 줄 알게 해야

한국 정치의 퇴행은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 풍토 탓이다. 지역주의와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모독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나. 유권자들의 선택은 거대 이슈 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분명히 작동한다는 걸 보여 줘야 할 때다. 우리 지역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유권자 스스로 제대로 된 후보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은 없다.

그래서 소수 정당의 공약과 후보의 이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체념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온다. ‘내 소중한 한 표’가 우리가 발 딛고 숨 쉬고 있는 우리 지역의 공기를 바꾸는 주춧돌이 된다. 마음속 다짐을 다시금 새겨야 할 유권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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