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집 찾은 이승만, 독립운동 자금 받아 간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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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 선생 손녀 윤정 씨

“아무것도 아닌 나를 초청해주고, 많은 분이 애써주셔서 말 못 할 정도로 고마워요!”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 1기 졸업생이자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을 기리는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손녀 윤정(83)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윤 씨는 지난 27일 북구 구포동 구포초에서 열린 ‘윤현진 흉상 제막식’에 유족 대표로 참석했다. 평소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윤 씨는 할아버지의 생애를 뒤돌아보며 행사를 꿋꿋하게 지켜봤다.

평생 독립운동 헌신한 만석꾼
구포초등서 윤현진 흉상 제막식
80대 손녀 수소문해 행사 참석


윤현진 선생은 국내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는 백산상회 전무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맡은 독립운동가다. 윤 선생은 1921년 김구 선생과 함께 의용단을 만들어 활동하다 중국 상하이에서 만 29세의 젊은 나이에 과로사로 순국했다.

손녀 윤 씨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한 뒤 경남 거창의 한 주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장기요양등급 4급 판정을 받고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다. 몸은 불편하지만, 윤 씨의 머릿속엔 할아버지의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윤 씨에 따르면 윤 선생은 경남의 유명한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양산, 김해 등 경남의 많은 토지가 윤 선생 집안의 땅이라고 알려졌다. 윤 선생의 집에는 배고픔에 굶주린 인근의 사람들이 밥을 얻기 위해 매주 수십 미터씩 줄을 섰다. 윤 씨는 생전에 직접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했다.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까닭이다.

윤 씨는 “할아버지가 단 한 번도 집안을 위해 돈을 쓴 적은 없을 만큼 모든 재산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납했다”고 말했다.

임시정부의 자금책이었던 윤 선생의 집에는 독립운동가가 직접 독립 자금을 받아가기도 했다.

윤 씨의 기억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찾아온 것도 생생하다. 독립자금을 중국 임시정부로 보내주는 일을 맡았던 큰아버지 윤현태 씨가 직접 이승만에게 엽전 두 꾸러미를 전달했다. 윤 씨는 “이승만이 직접 돈을 받아 양산시 물금읍, 삼랑진으로 낙동강 따라 올라갔다”면서 “결국 그 돈을 중국으로 보내는데도 몇 년이 걸렸다. 이런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다”고 전했다. 이후 일본 순사가 직접 집에 찾아와 할아버지의 행적을 캐묻기도 했다고 한다.

윤 씨는 큰할아버지인 윤현태 선생도 할아버지 못지않은 애국자라고 기억했다. 윤현진 선생이 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형인 윤현태 선생은 국내에서 독립 자금을 마련해 몰래 임시정부로 보냈다고 한다.

윤현진 선생 흉상 제막식은 구포초등 학부모회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학부모회는 지난해 건립추진위를 구성해 윤 선생의 캐리커처가 들어간 물통과 우산, 배지 등을 제작해 판매해 건립 비용을 모았다.

구포초등 김민선 학부모회장은 “윤 선생의 손녀를 제막식에 모시기 위해 올해 초 윤정 할머님의 집을 찾았다”며 “대한민국 독립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손녀가 혼자 외로이 사시는 모습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 씨는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흉상을 건립해준 구포초등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윤 씨는 “할아버지의 흉상 제작을 위해 정말 많은 분이 애써 주셔서 눈물이 날 정도”라며 “어린 초등학생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뜻이 독립된 나라에서 생생히 이어지고 있는 듯해서 정말 감동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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