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불로소득 주도 성장’ 이젠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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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로부터 시작된 부동산 투기 의혹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크게 올리는 얌체 짓 탓에 집으로 갔다.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 전 기자는 투기 의혹을 받던 상가주택을 판 수익 중 수억 원을 기부한 끝에 소망하던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는 국회의원 3명과 시·도의원 19명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대체 ‘부동산이란 무엇’이며 ‘정치는 누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부동산이라고 하면 재력가로 이름난 한 시의원을 10여 년 전에 인터뷰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취재가 마무리되고는 정작 궁금했던,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 물었다. 그는 대개 잘 안 물어보는데 기자 중에 더러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순순히 답을 해 주었다. 요약하면 공장(가족 소유)이 잘 되어 미리 사 둔 좀 넓은 땅으로 옮기고, 또 거기가 작다 싶으면 더 큰 땅으로 옮기고, 몇 번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선견지명! 이걸 뒤집으면 바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가 나온다. 투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그는 승승장구해 잠깐 국회의원까지 되었지만, 돈 문제로 말로가 안 좋았다.

부동산 불로소득 GDP 18.4%
대기업도 땅 사는 데 너무 열중

근로·사업 의욕 상실하기 십상
땅 부자 정치인 관련 입법 의심

거품 꺼진 日 전철 밟지 않도록
‘기본소득 토지세’ 주장 등 관심을


어디 그이만 그렇게 투기를 했을까. 롯데그룹도 껌만 팔아서 재벌이 된 게 아니다. 백화점 사업은 유통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과 임대업이다. ‘부동산 귀재’라는 이야기를 들은 롯데 창업주 고 신격호 총괄회장은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 당시 부동산 가치가 뛰면서 세계 부자 4위에 올랐다. 롯데는 지금도 국내 재벌 가운데 가장 많은 투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롯데만 땅을 사랑한 것도 아니다. 2017년 기준으로 상위 10개 법인이 가진 땅 규모는 5억 7000만 평으로 여의도 650개를 합한 크기다. 10년 사이(2007~2017년) 이들 법인이 보유한 땅이 서울의 두 배 크기만큼 늘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기업들은 땅을 사는 데 OECD 국가에 비해 9배의 자금을 투입한다. 지난 10년간 현대차, 삼성, SK, 롯데, LG 등 5대 재벌이 보유한 땅값은 3배나 올랐다.

인간을 화성으로 보내기 위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의 숭고한 노력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다. “화성 땅 한 평에 얼마나 한다고….” 한국에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 대덕에 자리 잡은 연구원들조차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집값이 몇 배 올랐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소주를 마신다고 한다. 2019년 전국의 부동산 불로소득은 352조 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8.4%나 된다. 개인은 일할 맛이 안 나고, 기업은 힘들게 사업을 할 의욕을 상실한다. 9급 공무원까지 재산등록을 하면 부동산 투기를 원천 봉쇄할 수 있을까. 부동산 불로소득이 공직에서 받는 혜택보다 크면 투기 근절은 여전히 어렵다. 기업의 토지 투기는 땅값 상승의 주범이다. 공직자 투기 근절 못지않게 기업의 부동산 투기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일본은 도쿄 등 3대 도시 권역을 제외한 지방의 공시지가가 수십 년째 연속 하락세다. 2018년 기준 빈집만 849만 채로 부동산 상속 포기도 급증하고 있다. 일본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우리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도 언젠가 거품이 빠지기 마련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과다한 불로소득 실현의 기대를 이제 끊어야 한다. 지난 22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토지 불로소득 토론회에서 나온 ‘기본소득 토지세’ 아이디어는 주목할 만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한다면 불평등을 상당 부분 줄여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 동시에 기업이 더욱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도록 유인한다는 주장이었다.

공시지가가 오르며 늘어난 보유세 부담만 해도 저항이 만만찮은 게 사실이다. 국회 의석 1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의 ‘기본소득 토지세’라는 이상이 법제화되어 세상에 구현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용 의원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이 23억 6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도 이해 상충이나 재산 증식 관련 의혹으로 탈당해 무소속이 된, 재산이 500억 원이 넘는다는 박덕흠·전봉민을 제외하고 계산한 평균이 그렇다. 이해충돌방지법이 8년이 넘도록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이를 국민의 대표로 뽑아 정치를 맡길지 자명하지 않은가.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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