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전문대학, ‘평생 직업교육’으로 돌파구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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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급감으로 위기를 맞은 지역 전문대학들이 비학령인구 평생직업교육을 통해 활로를 모색 중이다. 동의과학대 미래융합학부 양조발효과의 ‘맥주와 요리 실습’ 과목 수업 장면. 동의과학대 제공

올 2월말께 교육부가 학령인구 급감에 위기를 맞은 지역 대학을 살리기 위해 내놓은 방안(부산일보 3월 16일 자 18면 보도) 중 하나가 ‘전문대학의 평생직업교육 역량 강화’다. 이를 위해 5개 ‘마이스터대’를 도입해 100억 원을 지원하고 ‘후진학 선도전문대학’ ‘대학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을 도입, 성인학습자의 학위·비학위 과정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실제 부산의 전문대학들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2021학년도 입시에서도 고교 졸업생보다 성인학습자를 입학 타깃으로 삼았던 전문대학의 충원율 결과가 좋게 나타나기도 했다. 비학령인구의 직업교육이 전문대학이 활로가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동의과학대 미래융합학부 양조발효과 등
부산 15개 대학·8개 전문대서 과정 운영
재직·은퇴자 다수 주말·온라인 수업 병행
부산 평생학습 참여율 45.3%로 높아
4차산업 시대 직업 불안정 때문 분석
대학·지자체·기업 간 협업구조 필요


■독일 쾰른 맥주를 내 손으로

10여 년의 일식 조리 경력이 있는 회사원 이태준(43) 씨. 그는 지난해 동의과학대 미래융합학부 양조발효과에 입학했다. 이 씨는 “평소에도 대학을 꼭 다녀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며 “퇴직 뒤 조리 경력을 살려 음식점을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양조발효과에 지원했다”고 입학 계기를 밝혔다.

양조발효과에서는 수제 맥주와 전통주, 발효 식품 제조에 관한 이론 교육은 물론 각종 음료를 제조하며 체험할 수 있다. 독일 쾰른을 대표하는 맥주 ‘쾰쉬’는 이 씨의 첫 수제맥주다. 이 씨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자동화 공정으로 제조된 맥주보다는 탄산이나 풍미가 조금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품질은 만족스러웠다”며 “시음한 가족들의 호평에 마음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씨의 사례처럼 올해 동의과학대 미래융합학부 신입생 평균 연령은 만48세다. 신입생 대다수가 재직자이거나 은퇴 이후 제2 삶을 준비하기 위해 입학을 결정했다. 동의과학대 미래평생교육사업단은 2019년부터 동남권 전문대학 중 유일하게 교육부 주관 ‘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LiFE)’에 참여하고 있다. 사업단은 이를 바탕으로 미래융합학부 내 ‘사회복지요양서비스과’ ‘부동산공유비즈니스과’ ‘양조발효과’ ‘헬스케어매니지먼트과’를 신설했다.

정원이 100명인 이들 학과는 지역 사회 성인 학습자의 학업 수요와 산업체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동의과학대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신입생들의 특성을 고려해 주말 수업, 온라인과 병행한 ‘블렌디드 러닝’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 중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교육부 예산 중 평생교육에 할당된 예산은 1%에 불과하다. 이에 동의과학대는 다양한 장학혜택을 통해 성인 학습자의 교육 부담을 낮췄다. 신입생 전원 입학금을 면제하고, 최대 50%까지 수업료를 감면하고 있다.

경남정보대도 후진학선도대학사업단을 설치하고 평생직업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경남정보대는 특히 동원과학기술대, 마산대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프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평생직업교육 효율을 높였다. 또 성인학습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33개 과정을 운영 중이다. 성인학습자의 불편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모바일 기반 온라인 학습공동체를 활용하고 있는 게 이 대학 평생직업교육의 특징이다.



■정부·지자체·대학·산업·민간 협업 필요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인평원)이 부산 거주 25~79세 시민 12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부산 성인의 평생학습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45.3%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대비 5.3%포인트(P)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이중 국가학력 인증체계에 해당하는 ‘형식교육’ 참여율(1.5%)보다 공식 학위나 졸업장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형식교육’ 참여율(44.6%)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형식교육 프로그램 영역별로 보면 직업능력향상교육이 2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또한 전국 대비 6.4%P 높은 수준이다. 이어 문화예술 스포츠교육(14.1%), 인문교양교육(6.0%) 등의 순으로 참여율이 높았다. 이와 함께 직업과 관련된 목적으로 비형식교육에 참여한 비율은 60.1%로 전체 참여자의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들의 직업교육 참여율이 높고 수요도 많은 것은 ‘4차 산업혁명 도래’로 인한 직업 불안정성과 수명 연장이 크게 작용했다. 부산시가 2019년 내놓은 자료를 보면 당시 부산시 거주 50~60세, 이른바 ‘신중년’은 108만 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31.6%에 해당한다. 부산시는 2040년까지 신중년 인구 비율이 30%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저출산 여파로 생산가능 인구는 247만 명에서 170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신중년 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도 부산시의 주요 일자리 정책으로 부상했다.

다행히 부산에는 15개 4년제 대학과 8개 전문대학이 평생교육원을 운영 중이며, 각 지자체와 공공도서관 등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는인프라도 어느정도 갖췄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부산시 등이 시민들의 평생직업교육 비용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또한 지역 산업계 또는 기업과 ‘계약학과’를 개설해 입학 뒤 취업까지 보장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평생직업교육 성공의 관건이다.

인평원 고영삼 원장은 “인공지능(AI) 등 기계가 사람이 하는일을 대신 하는 시대가 되면 신중년들이 직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평생직업교육 욕구도 높은 것이다. 지역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 100% 이상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학과를 신설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도 정부와 지자체, 지역 산업계, 기업이 협업하는 구조가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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