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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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박물관 기증유물 특별전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전심

혼례 등 길사에 주로 사용하는 자수가 놓여 있는 보자기. 부산대박물관 제공

‘아들은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한데 어릴 적부터 아팠다. 결핵성척추염이라는 이 가시(병)는 지금도 아들과 함께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되면 기꺼이 아들과 결혼해 준 며느리에게 주려고 색색의 비단을 모으고 수를 놓아 베갯모를 만들었다. 한데 한국전쟁이 터진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것들을 칠흑 같은 밤에 과수원에 묻고 피난길에 나섰다. 하지만 그게 모자가 함께한 고향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전쟁통에 아들과 어머니도 헤어졌다. 아들은 살아 있으나 어머니의 생사는 여전히 모른다. 이후 아들은 1962년 부산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같은 학교 간호학과를 나온 여인과 결혼한다. 요즘으로 치면 ‘캠퍼스 커플’이었다. 여인은 남편을 통해 시어머니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와 비슷한 성품이었다. 결혼할 때 친정어머니로부터 몇 점의 조각보와 예쁜 수가 놓인 베갯모를 받았으니….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하나둘 조각보 베갯모 등 각종 유물을 모으기 시작한다.’

김동수 명예교수·배정희 여사
2012년 기증한 4000여 점 중
450점 추려 8월까지 전시
보자기·악기·목가구 등 다양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들과 아내는 수많은 봉사와 기부로, 장기려 박사와 함께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김동수 부산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와 그의 부인 고(故) 배정희 여사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수십 년간 모은 4000여 점을 2012년 부산대학교에 기증했다. 그리고 부산대박물관의 8년에 걸친 정리와 연구 끝에 최근 일반에 공개했다.

부산대학교 박물관(관장 김두철)은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김동수 명예교수·배정희 여사 기증유물 특별전-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전심(傳心)’을 8월까지 개최한다. 이번 기증유물전시에는 전통복식, 전통예술, 사랑방과 규방, 전통도구, 전통의학 등으로 나눠 전체 기증유물 중 450점을 추려 보여 준다.

전시 물품을 보면, 먼저 유물의 다양성에 놀란다. 마치 미니 박물관을 옮겨 놓은 것 같다. 특히 떡에 문양을 찍는 도구인 떡살을 비롯해, 악기, 자물쇠, 목가구, 옹기류 등 일상에서 많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부귀와 수복을 기원하는 길상무늬와 태극무늬, 빗살무늬 등의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나무 떡살은 물론이고 자기 떡살도 만나 볼 수 있다. 자물쇠는 더 다양하다. 원형, 선형, 용두형, 북통형, ㄷ 자형, 문자조합형, 물고기형 등 수십 개의 자물쇠가 눈을 즐겁게 한다. 의료 분야 기증자답게 한방 유물도 발길을 붙잡는다. 그 크기만큼 다양한 침을 비롯해 침통, 약저울도 만나볼 수 있다.

목가구로는 화각 문갑, 자개 이층장·사방탁자 등이, 장신구로는 다양한 모양의 담뱃대, 안경(집), 호패, 여성 노리개, 비녀가 진열돼 있다. 위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의 글씨로 추정되는 글이 쓰인 병풍도 전시돼 있다. 전시 유물 중 자수 베개, 보자기, 의복(복식)은 그 화려한 색감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현재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4호인 ‘자수책거리병풍’이다. 책거리 내용을 담은 8폭 병풍으로 기증할 때엔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전문가를 통해 전면 해체·수리, 보존처리 후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18~19세기에 제작된 이 병풍은 도화서 화원이 밑그림을 그리고 궁중의 수방(繡房)에서 자수를 놓은 것으로 예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의 지도 중 서양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지도로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된 ‘조선왕국전도’도 기증유물에 포함돼 있다. 이 지도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한 최초의 서양 지도다.

김동수 명예교수는 “아픈 몸을 이끌고 피난 온 나를 받아주었고, 가정을 이루고 지금껏 의사라는 꿈을 펼치고 살게 해 준 부산시민들과 함께, 아내와 함께 모은 수집품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언제까지 열겠다는 마감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 박물관 이재진 학예사는 “8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에게 기증자의 마음이 전해지고, 최대한 많은 분이 전시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 일정을 탄력적으로 가져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입구엔 그립고 사랑하는 분에게 마음을 전하는 엽서와 봉투, 우체통도 준비돼 있다. 마음을 엽서에 적어 우체통에 넣어 놓으면, 박물관 측에서 8월 이후 이를 모아 발송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머니의 한 없는 사랑, 애틋한 사랑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더불어 유물을 통해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해 볼 수도 있을 터이다. ▶‘김동수 명예교수·배정희 여사 기증유물 특별전-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전심(傳心)’=8월까지 부산대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무료. 051-510-1838.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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