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인간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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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라이프부장

“섬에 도착해 내리면 긴장해주세요. 거리의 동물을 만지거나 방해하면 안 되고요. 섬의 모든 동식물과 자연은 그대로 두세요. 자연에 변형을 가하는 행위는 체포될 수 있습니다. 이 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도착 전 안내 메시지가 계속 나온다. 이곳은 세계적인 생태보호구역으로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착상한 계기가 된 유명한 섬, 남미 갈라파고스제도이다. 에콰도르 본토에서 1000km나 떨어진 갈라파고스는 여행자들이 죽기 전 꼭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힌다.

방역 이유 대저 유채꽃 갈아엎기로
가축전염병 때는 살처분 방식 선택
매년 수천만 동물 생매장당해
인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해결책
코로나19도 생태계 경고라는 해석
모든 생물체 공존하는 방법 고민해야

지난 30년간 지구별 여행자로 수많은 나라를 방문했고, 온라인 여행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여행 덕후인 내게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를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갈라파고스라고 답한다.

갈라파고스의 놀라움은 공항을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갈라파고스 거리 곳곳에 물개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다. 바다 가까이는 이구아나가 유유히 걸어 다니고 큰 부리가 인상적인 펠리컨 새는 물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여기저기 늘어진 물개들 사이로 사람들이 조심해서 걸어 다녀야 한다.

비싼 숙박비에 비해 호텔은 상당히 열악하다. 자연을 훼손할 수 있어 좋은 시설의 숙소공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있던 건물을 활용하다 보니 호텔은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돈만 들이면 오지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갈라파고스는 그렇지 않다.

갈라파고스는 그렇게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하게 했다. 물개들과 같이 거리를 걷거나 수영하고 이구아나가 놀라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춘다. 생선가게의 단골, 펠리컨은 생선을 나누자며 꽥꽥거린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공존하는 그곳의 일상을 통해 인간은 대자연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여행도 가지 못하는 요즘, 굳이 갈라파고스 공존 여행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상암 월드컵 축구경기장 넓이의 80배에 이르는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을 대부분 갈아엎기로 방침을 정했다. 트랙터를 동원해 순식간에 꽃이 잘려나가게 된다.

지난해 유채꽃밭 파쇄 현장을 보여준 <부산일보>의 사진 아래로 줄줄이 달렸던 댓글이 생각난다. 육중한 트랙터에 푹푹 잘려 나가는 꽃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는 하소연도 있었고, 작은 꽃이라도 생명이 있는데 꽃이 무슨 잘못이 있냐는 말도 있었다. 인간의 죗값을 대신 꽃이 지고 있다는 반성도 기억난다. ‘꽃들의 집단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인간들이 노력하자는 결의에 찬 다짐도 있었다.

그런데 인간들의 반성과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봄이 왔고 대저생태공원의 수많은 꽃들은 안타깝게도 올해 다시 집단희생의 칼날 아래 위태롭게 서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인간이 선택한 방역 방식은 지독히 인간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해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살처분’이 해결법으로 나온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AI에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전염병 발생 농장 반경 3km 내 모든 농장의 가금류를 죽이게 된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약 392만 마리, AI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약 9415만 마리에 이르고 올해만 해도 조류독감으로 벌써 2535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됐다. 아프지도 않은 닭과 오리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상황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70~80%는 건강한 상태로 생매장되고 있다.

수의학자들은 인간이 만든 공장식 축산방식 때문에 가축전염병이 급속히 퍼지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심지어 몇몇 가축전염병은 이미 백신이 개발돼있음에도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백신이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현재 전 세계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는 인간을 향한 지구생태계의 경고라는 해석이 많다. 이 역시 인간의 잘못으로 생겼다는 말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선택이 역으로 인간을 해치는 무기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 엄중한 시국에 방역의 중요성과 위급성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갈아엎고 생매장하는 지금의 방식에 대한 변화의 고민을 서둘러야 한다.

“식물과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며 느끼며 모든 생물체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라. 함께 머물다 가벼이 떠나라”. 평화,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시인 게리 스나이더의 조언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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