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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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견/라종일·김현진·현종희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의 발견>은 근현대 격변 속에서 한국이 스스로를 발견해온 도정과, 앞으로 세계 속에서 ‘한국’을 실현시켜 나아가야 할 과제를 토로한 책이다. 행정가, 외교관을 지낸 정치학자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두 젊은 작가와 함께 탐색에 나섰다. 대담과 편지글 형식이어서 부담 없이 읽히는 실한 내용이다.

근현대 격변 속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
세계 속 한국 나아가야 할 과제 등 토로
한국인 창조적 능력, 민주화운동서 쌓여
코로나 시대 ‘우리가 만든 세계’ 열어야

라종일에 따르면 한국은 전근대에는 중국의 세계에, 근현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세계에, 그다음에는 소련과 미국의 세계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강의 기적’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린 것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통해 세계에 비로소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에 결정적으로 알려진 것은 민주화를 통해서였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이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걸 충분히 자랑삼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점령군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기 손으로, 자기 힘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 현대사, 한국인의 활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민주화운동이 정치권력의 쟁취로 이어진 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었다. 저자는 한국인의 창조적 능력도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여물어졌다고 본다.“아주 단단한 권위에 대항해 싸워본 경험, 싸움을 위한 전술 전략 이론을 자기 힘으로 맹렬하게 개척하고 개발한 경험이 지금 한국인들의 창조적 능력을 낳았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BTS 등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한국의 문화적 업적은 민주화운동을 통해 그 토대가 배양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창조적 능력은 참으로 지난했던 절차탁마의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조금씩 여물어졌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커다란 충격으로 민간인 사망자만 200만 명에 달했던 비극의 한국전쟁,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이한 군부 독재, ‘잘살아 보세’라는 시대정신으로 뜨겁게 내달렸던 산업화 과정, 유신 정권 침몰 이후 다시 맞닥뜨린 신군부 통치의 ‘에피고니(Epigone) 시대’를 겪으면서, 견뎌내면서 서서히 담금질 됐다는 것이다.

라종일은 이제 코로나 시대에 ‘한국 발견’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 오랫동안 시달렸던 ‘선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면서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닌 ‘우리가 만든 세계’를 열어젖혀야 한다고 말한다. 라종일은 근대화의 키워드 하나를 시빌리티, 곧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한다. ‘룰을 생성하고 지키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랑스 혁명처럼 새로운 인간상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실현하는 나라가 곧 자신만의 세계를 지닌 나라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한국의 발견’이 되리라는 것이다.

19세기 전반까지 49개의 소국에 불과하던 후진국 독일이 그랬다. 괴테의 문학과 칸트 피히테 헤겔로 이어지는 철학에 의해 ‘돼지 야단칠 때나 쓰던 독일어’는 훌륭한 문화적 언어가 되었다고 한다. 자칫 소멸할 뻔한 한국어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지켰고, 이제 그것은 세계적인 언어로 조명받고 있다. 우리에게 서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높다란 사상과 근대의 운동으로 동학도 있다.

저자는 북한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남한과 같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피력한다. 김일성도 말년에 김정일의 정보 차단에 의해 북한이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고 한다. 폐쇄적 구조 속에서 김정일은 또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겼고, 김정은은 개혁 개방을 주장하는 장성택을 처단하고 폐쇄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통일은 힘들다 하더라도 남북한이 서로 위협하지 않고 교류 협력할 수 있는 게 최고의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한다. 공존하는 것, 그것이 근대화의 핵심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서로 맥락이 닿는 거라는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의 발견은 무릇 세계의 발견이어야 한다. 그 어떤 범주와 이름에도 전혀 구애되지 않고 손발은 신중하되 머리는 과격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 여로, 이 험난한 모험을 통해 우리의 존재 자체와 모든 것이 새롭게 조명받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말 그대로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을 시작해야 한다.” 라종일 김현진 현종희 지음/루아크/320쪽/1만 7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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