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부산시청 7층 시장실, 서울시청 6층 시장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1997년 8월 6일 오전 1시 42분 26초. 폭우가 쏟아지던 가운데 대한항공 801편 보잉747은 시속 160km 속도로 미국령 괌 공항 인근 야산 니미츠 힐을 들이받았다.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다. 사고 직전 부기장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한항공 괌 참사를 문화적 관점으로 분석한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의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편에서 “한국처럼 상사와 부하 간의 ‘권력 거리’가 클수록 의견교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기장의 눈치를 본 부기장이 잘못된 판단에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매뉴얼에 따라 조종간을 넘겨받지 않은 것 등이 일으킨 복합 인재였다”라고 지적했다. 1997년 조종실은 ‘선임자인 기장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기장이 책임지고 비행기를 조종하고 다른 사람은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직된 분위기였다고 글래드웰은 전한다. 사고 이후 대한항공에 영입된 미국 델타항공 출신 비행전문가는 긴박한 조종실에서 복잡한 존칭이나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도록 권위주의적 서열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권위주의 서열 문화, 괌 칼 참사 원인
부기장이 상급자에게 문제점 못 알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성추행 민낯
경직된 조직문화가 부패와 부정 온상

시장 아닌 시민 심기 보호에 ‘별표’
차기 시장은 수평적 소통 문화 필수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조종실처럼, ‘권력 거리’가 큰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권력을 박탈당한 서열이 낮은 사람들은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 사실을 윗사람에게 알리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가 참사를 예견하면서도 입을 다무는 공범자가 되는 ‘침묵 효과’가 일어난다. 큰 ‘권력 거리’는 충남도청 도지사실, 부산시청 7층과 서울시청 6층 시장실도 마찬가지였다. 권위적인 조직 문화가 개인 일탈과 합쳐져 한국의 첫째, 둘째 도시 시장이 집무실에서 여직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뒤 사퇴하거나 목숨을 끊었다. 세상과 단절된 피해 여성의 고통 앞에 826억 원의 보궐선거 비용은 말 꺼내기도 무색하다. 도시와 시민의 수치심, 국가 리더십에 대한 불신 등 국가적 손해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참모 누구도 조직과 수장의 문제를 알고도 그 사실을 감히 알리지 못했다.” 김지은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는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도지사실 문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거기서 반문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오랜 참모들은 수시로 ‘모두가 No라고 할 때 참모는 Yes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법과 원칙보다 조직을 위한 희생이 중요한 곳이었다. 불법과 부정이 횡행했지만 모두가 눈 감았다.” 김 전 수행비서는 “전임 수행비서가 인수인계항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별표 두 개를 그려라’라고 했다”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움으로 치부됐다. 조직의 문제에 대해 말하면 ‘그저 견디라’고 했다”고 증언한다. 안희정 조직의 회식 건배사는 ‘조배죽’이었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는 뜻이다. 막대한 권력을 가진 대한민국 조직의 민낯이었다.

부산시청 7층과 서울시청 6층 시장실 문화는 얼마나 다를까? 오거돈 전 부산시장 참모들은 평소에 ‘그렇게(?) 하지 마시라’며 완곡하게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조종간을 뺏을 정도로 강력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어른’은 귀담아들을 마음도 없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도 수차례 인사이동을 요청했지만, ‘6층 시장실 사람들’은 “네가 예뻐서 그렇다” “좀 더 있어 달라”며 묵살했다고 주장한다.

김지은 씨 동료들은 재판 과정에서 “(선거 캠프에서)만연한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은 ‘구조적인 환경’ 속에서 벌어졌다. 왜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는지…결과적으로 그것은 안희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낳았고, 선배들과의 민주적인 소통은 불가능했다”라고 고백했다. 아무도 위험을 말하지 않고, 비밀을 준수하는 조직에서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부패, 부정이 싹틀 수밖에 없다. 국가와 국민만 불쌍해진다.

부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12일 앞으로 다가왔다. 차기 시장이 거대 도시 부산과 서울을 임기 1년여 만에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오거돈, 박원순 사태가 드러낸 권위주의적인 서열 문화, 경직된 7층과 6층 시장실 조직 문화는 없애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행정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권력의 도파민에 도취되지 말고, 상대방 시각에서 자신의 일탈을 감시하라는 이야기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참모들과 공원을 산책하는 이벤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차기 시장 수행비서 인수인계 항목에 ‘시장의 심기 보호’가 아니라 ‘시민의 심기 보호와 수평적 소통’에 별표 세 개를 그려야 한다. 부산, 서울시청 시장실이 ‘당신만의 천국’이 되지 않기를 간곡히 소망한다.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