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건축물 미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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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의 출발점이자 대다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재정적인 근간으로 삼고 있는 ‘미술을 위한 퍼센트법(Percent for Art)’이란 게 있다. 대규모 건축물을 신·증축할 때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 설치에 할애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국가의 주·지방정부는 퍼센트법을 권장하고, 관련 조례나 정책을 통해 건축물 인근이나 공공장소에 미술품을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도시마다 적용 요율이 다르지만, 대략 건축 비용의 1%가 적용돼 ‘1% 미술’로 부르기도 한다. 1930년대 미국에서 이 제도가 고안될 때는 뉴딜정책 일환으로 실직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목적이었다.

우리나라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일정 면적 이상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 조항을 신설했다. 거리 환경을 개선하고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기 위해서였다. 제정 당시 권장 사항이던 미술품 설치는 1995년 의무화됐다. 2000년엔 적용 요율이 1% 이하로 낮아졌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0.7%로 책정했다. 2011년 개정된 법은 ‘미술장식’이란 용어 대신 건축물 ‘미술작품’으로 바꿨으며,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선택적 기금제를 도입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건축물 미술작품에 눈이 간 건, “엘시티에 설치된 28억 원어치 미술품 모두가 박형준 부인 아들이 운영하는 J사와 관련돼 있다”는 보도 때문이다. 박 후보 캠프 측은 “엘시티와 J사가 전혀 특혜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계약했던 돈도 다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미술작품 가격은 부동산 공시지가처럼 공표되는 게 아니어서 일반인이 알기란 쉽지 않다. 다만 ‘공공미술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설치지역 건축물명 검색에 엘시티를 넣으면 총 11점의 작품과 작가 면면을 알 수 있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한편으론 안타깝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시행된 지 내년이면 반세기인데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의심과 반박에서 벗어나지 않아서다. 제도 도입 당시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나 미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변했음을 고려한다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전반에 대한 현실 진단과 대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 부산에선 해운대구청의 ‘꽃의 내부’ 무단 철거 사태로 한바탕 난리가 있었다. ‘부산시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가 개정됐지만 갈 길이 멀다. 공공조형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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