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중기부 장관에게 ‘블록체인 특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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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금융팀장

‘두 차례 특구사업 지정을 통해 (중략) 투자 유치, 인력 양성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략) 블록체인 기술이 부산의 100년 미래 먹거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17일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 후 부산을 처음 방문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의 일부다. 자료는 블록체인 특구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취임 후 첫 부산 방문한 권칠승 장관
일부 사업 중단 모른 채 ‘성과’만 강조
부산 특구 지정한 박영선 전 장관
지금은 “서울 블록체인 활성화” 공약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허나 일일이 짚어 반박하진 않겠다. 평가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인 것이기에 당신과 나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아무리 양보해도 7개의 특구사업 중 하나가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된 상황에서, 자료에 7개 사업을 버젓히 나열하며 ‘잘 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추가 특구사업 중 하나인 ‘데이터 거래’ 사업의 경우 주관사 A사의 대표가 숨지는 바람에 회사 자체가 공중분해 수준에 이르렀다. 부산시 역시 “진행이 어렵다”며 사업 중단을 인정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해당 사업자 선정에 앞서 A사 대표가 이미 사망했다는 점이다. 대표 사망으로 풍비박산이 예고된 회사를 아무렇지 않게 사업자로 선정하고도, 그래서 결국 사업 자체가 중단되고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아니, 사달이 난지 몇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중기부 자료에는 해당 사업명이 태연히 포함돼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쯤 되면 다른 사업에 대한 평가 역시 신뢰가 가질 않는다. 부산을 방문할 거라면 최소한 중기부가 부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 정도는 하고 내려왔어야 했다. 중기부 장관의 첫 부산 방문이 씁쓸했던 이유다.

현직 중기부 장관에 대한 실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전직 중기부 장관의 행보가 기자의 마음을 다시 흔들었다. 전 장관인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이 되면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서울시민 모두에게 1인당 10만 원씩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지역화폐를 지급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박 후보는 앞서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를 서울에서 유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서 서울을 위하는 살뜰함이야 당연지사이겠지만, 부산시민의 입장에선 섭섭함 또한 인지상정이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 지정이 바로 박 후보의 장관 재임 시절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특구사업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혁신산업과 관련된 신기술에 대한 실증(지역특구법)이고, 다른 하나는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의 육성(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다. 장관 땐 부산을 블록체인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며 특구를 지정하고선, 이젠 서울을 블록체인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박 후보만 탓할 일도 아니다. 부산의 특구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서울에서라도 제대로 해보겠다는 심산일테다. 17일 배포된 중기부 자료와는 달리, 부산 블록체인 특구사업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사업은 화폐 발행 자체가 중단된지 오래다.

이쯤에서 혹자는 묻는다. 블록체인 특구도 아닌 서울에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발행이 가능하냐고. 그럴 거면 블록체인 특구가 뭔 소용이냐고.

전자금융거래법은 거래의 중앙시스템 경유, 기록 파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거래 당사자 각각에 분산된 기록을 특징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로는 현행법상 디지털화폐를 유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규제를 면해주는 특구가 필요한 셈이다. 여기까지가 중기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중앙 서버와 분산원장을 이중으로 사용해 ‘중앙시스템 경유’ 의무를 지키고, 법상 해석이 모호한 ‘기록 파기’에 대해서는 ‘오프체인 파기방식’ 기술을 적용해 위법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프체인 파기방식’이란 모든 기록이 파기되지는 않지만 개인정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신기술로, 법상 ‘기록 파기’의 정도가 어느 수준까지인지 해석이 모호하다는 점을 파고 드는 것이다. 어렵다. 굳이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러니 블록체인 특구 ‘무용론’까지 나온다.

현 장관은 블록체인 특구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 장관은 관련 산업을 다른 곳에서 육성하려 분주한 코미디 같은 상황. 중기부가 부산의 100년 미래 먹거리로 기대해 마지않는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현 주소다.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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